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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심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논문심사(peer review)는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을 저자 외에 전문가가 평가하고 게재할 만한 지 여부와 내용에 의심스러운 점이 없는지를 심사하는 시스템이다. 권위 있는 학술지는 논문 심사를 도입하고 있으며 논문심사는 논문 내용을 보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학적 자주성과 공적인 책임, 냉전 시대 논문심사의 대두라는 논문을 저술한 멜린다 볼드윈은 논문 심사 시스템이 널리 보급된 역사와 원래 의도에 대해서 설명했다.

볼드윈은 미국물리학회 회원지인 피직스 투데이(Physics Today)에서 편집과 서평을 다루고 있으며 물리학 역사 등에 대해서도 글을 쓰는 역사가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라고 할 수 있는 네이처 조차 1973년 이전에는 체계적인 외부 심사를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았다.

최근에는 논문 삼사는 논문을 발표하기 전 일반적 절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문 심사의 역사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볼드윈에 따르면 수많은 상업 잡지조차 1970∼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심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논문심사 시스템은 미국에서 현저하게 발달했는데 이는 심사 행위가 침투하게 된 역사에 관심을 둘 만한 포인트다.

일설에 따르면 1660년 영국에서 설립된 과학 학회인 런던왕립학회 초대 사무총장인 헨리 올덴부르크가 먼저 외부인에 논문 심사를 의뢰한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에피소드는 심사 개념이 17세기부터 존재해 과학계의 표준이었다고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볼드윈에 따르면 실제로 오늘날 이용하는 논문심사 시스템 형태가 시작된 건 19세기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예전부터 심사가 일반적이었던 건 영어권 국가와 런던왕립학회에 소속된 잡지였지만 20세기 들어서도 영어권 외에 국가와 상업 잡지에선 심사가 일반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 중 하나인 알버트 아인슈타인 논문은 대부분이 심사 없이 게재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1936년 쓴 중력파에 관한 논문을 피지컬리뷰(The Physical Review)에 제출했을 때 편집자가 외부 의견을 요구하고 논문을 심사한다는 걸 불쾌하게 여겨 논문을 철회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볼드윈은 아인슈타인이 동요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학술지에 게재할 논문을 편집자 자신이 평가하는 학술지에 게재하는 독일 시스템에 익숙했다는 지적이다. 또 피지컬리뷰에서도 확고한 심사 시스템이 존재하던 건 아니고 이전에 아인슈타인이 같은 학술지에 제출한 논문은 심사가 없어 아인슈타인을 화나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심사 시스템은 17세기 이후 과학계에서 불변의 제도는 아니지만 19세기 경에는 학문적인 세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볼드윈의 연구에 따르면 논문 심사가 일반화된 건 20세기 후반 냉전 시대 미국이었다고 한다.

냉전 시대인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과학적 자율성과 공적 책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의미 없는 과학적 연구에 공적자금을 너무 소비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미국국립과학재단 NSF에 쏟아졌다. 문제를 제기한 의원들은 NSF에 보조금 지급을 억제할 필요를 호소하는 동시에 보조금 지급 과정에 대해 의회가 감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NSF가 공청회 등에서 주장한 솔루션 그러니까 전문 과학자가 심사해 연구의 정당성과 성과를 담보한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전 시대에는 심사는 주로 추천(Refereeing)이라고 적었지만 NSF는 굳이 심사를 의미하는 용어인 동료 검토(peer review)로 썼다. 이 말을 이용한 이유에 대해 볼드윈은 심사를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같은 전문 분야를 가진 좁은 범위의 사람이라고 암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NSF는 연구를 위해 공적자금을 필요로 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의회 등이 심사해 어떤 연구의 의미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의회가 간섭하지 않고 연구 가치를 담보하는 정당한 방법으로 주목받은 게 바로 논문심사이며 이는 이후부터 중요시된다.

의회의 자율성을 둘러싼 논의에서 미국 내에선 심사는 과학의 정당성과 성과를 보장한다는 생각이 정착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 밖에선 여전히 논문 심사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미국 국외 학술지 편집자와 과학자들은 미국인은 심사를 너무 중시한다며 곤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영국 의학 잡지인 란셋(The Lancet )에도 1989년 미국에서 너무 많은 심사를 요구한다는 논설이 게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편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할 만큼 과학 초강대국인 미국의 영향력은 간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과학자들도 미국에서 인정하는 심사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높아지게 된다. 결국 논문 심사는 미국 밖에서도 인기를 끌게 된다.

볼드윈은 논문 심사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논문 심사 시스템으로 심사자 보상을 제창했다. 일찍이 1970년대 NSF가 청문회에서 심사 시스템에 대해 주장했을 때 심사자는 과학에 전념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바람직하며 개인 정보도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볼드윈은 NSF의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좋은 피드백을 얻으려면 사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많은 경제 잡지에서 보수를 지불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 보수를 지불하면 심사자는 논문을 체크해 보내 납기가 줄고 검사에 대한 자세도 개선된다. 소득이 부족한 학자와 전문 지식이 있는 학술 글에 대해 보상된 심사를 의뢰하는 건 학자의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심사자가 중요한 포스트에 붙는 것에 치우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다른 인센티브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일정 수 논문을 투고한 학자는 새로운 논문을 제출하기 전까지 심사 담당을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들 수 있다. 그가 밝힌 대로 논문 심사는 결코 수백 년 전부터 불변의 시스템은 아니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 따라서 많은 과학자가 현재의 심사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면 현실적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게 볼드윈의 주장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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