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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전벨트가 대중화되기까지…

현대에선 비행기에 탑승하면 이착륙할 때 안전벨트 착용이 요구되며 착용 사인이 나오지 않을 때에도 착석할 때에는 갑작스런 흔들림에 대비해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걸 권장한다. 그런데 비행기 개발 초기부터 승무원에게 안전벨트 착용이 권장되던 건 아니다. 한때 안전벨트 위험설이 나온 적도 있다. 안전벨트는 어떻게 대중화되게 됐을까.

라이트 형제가 인류 첫 동력 비행에 성공한 건 1903년이었지만 이후 빠르게 비행기가 발달하면서 1914년 발발한 제1차세계대전에서 군용 정찰기와 전투기도 등장했다. 전후에는 비행기를 이용한 본격적인 수송이 시작되어 1919년에는 세계 첫 국제항공편이 취항했다.

처음에는 결사적인 비행기 여행이 점점 신뢰성을 더해가면서 비행기가 주는 편안함과 안전성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1929년에는 보잉 수석 엔지니어이던 찰스 몬티스가 미국 기계학회회의에서 침실과 흡연실, 전망대, 식사 준비 등 철도 여행과 거의 같은 서비스가 상용 비행에 제공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항공 여행 안전도 보잉의 최우선이라면서 안전벨트 필요성을 청중에게 호소했다. 안전벨트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도입에 반대하고 있고 미국에서 운항되는 대부분 교통편도 승객에 벨트를 제공하지 않지만 때로는 이게 필요하다는 게 빠르게 검증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 그가 상정한 건 항공기 충돌 사고가 아니라 난기류와 이륙 전 흔들림 등이다. 그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1929년 시점에선 승객 안전벨트는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으로 간주됐지만 안전벨트를 표준 옵션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1941년 발발한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은 더 많은 자금과 두뇌를 항공기 연구에 쏟아 부었다. 1942년 자동차나 항공기 충돌 사고 생존율 향상을 목표로 한 CIR(Crash Injury Research) 프로젝트가 발족했다. CIR에서 12년간 이사와 선임연구원을 지낸 휴 데헤븐(Hugh DeHaven)은 원래 파일럿 출신으로 훈련 중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경험으로 많은 연구를 진행해 충돌 생존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1940년대에는 여전히 안전벨트에 회의적인 주장이 뿌리 깊게 남아 있어 충돌이 발생했을 때 안전벨트가 복부에 파고들어 내장 손상을 일으킨다는 설도 있었다.

그런데 1950년 10월 31일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발생한 빅커스 바이킹(Vickers VC.1 Viking) 추락사고는 다시 한번 안전벨트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이 사고는 짙은 안개에 의한 시야 불량이 원인이 되어 150∼200km/h 속도로 지상과 20도 각도로 접촉, 승무원과 승객 30명 중 28명이 사망했다.

사고 조사를 실시한 법의학자 도널드 테어(Donald Teare)는 1951년 9월 보고서에서 피해자 절반 이상이 안전벨트로 인한 것이라며 직접적인 사인은 안전벨트였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는 큰 화제를 불러와 위험한 안전벨트라는 제목으로 비행기 사고 당시 안전벨트가 치명적 손상을 일으킨다는 기사가 공개되는 등 미국에선 안전벨트를 기피하는 풍조가 급속하게 확산됐다.

안전벨트가 위험시되는 상황을 뒤집기 위해 코넬대학 연구팀이 조사에 착수햇고 1952년 9월 연구팀은 안전벨트가 위험하지 않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조사 결과 활주로에 충돌한 비커스 바이킹에 걸린 충격은 승객 시트 벨트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한편 오른쪽에 걸린 충격에 의해 승객 몸이 오른쪽으로 틀려 좌석 내 딱딱한 팔걸이가 간장과 비장에 상해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역시 승객의 직접적 사인이 아니라며 연구팀은 비행기가 미끄러져 굴러가 좌석 벨트가 기체에서 떨어져 나온 딱딱한 기체 표면과 깨진 유리창 파편 등으로 돌진한 데 따른 것으로 대동맥 파열이나 골절이 진정한 사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다른 전문가도 이 결론에 동의했다. 승객 부상 중 방광과 복부 손상이 보이지 않았다며 안전벨트에 의한 부상 흔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1950년대 다양한 추락 사고에 따라 미국 의회는 1958년 연방항공법을 제정해 민간 항공기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 규제를 강화하는 노력도 진전됐다. 객석 안전벨트를 포함한 기본적인 항공기 안전 요구 사항은 1972년 성문화되어 이후 자주 업데이트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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