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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명가 픽사는 어떻게 탄생했나

스타워즈 등을 다루는 영상 제작사 루카스필름으로부터 독립한 픽사는 토이스토리와 카 등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를 다수 제작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창립 당시 픽사는 애니메이션 영화 회사가 아니라 거의 팔리지 않는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곳이었다. 무어의 법칙을 믿고 개발을 계속한 픽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떻게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 기업으로 성장했을까.

HP가 차고에서 창업하고 페이스북이 대학 기숙사에서 시작했듯 기술 기업은 기업이 되기 전에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픽사의 시작도 루카스필름에서 독립하기 전 단계다. 픽사 공동창업자인 앨비 레이 스미스(Alvy Ray Smith)에 따르면 당시 일부 컴퓨터그래픽 연구자 사이에서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예술 형태인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견해가 나왔고 자신을 포함해 엄청난 연산 능력을 사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1970년대 중반 이런 계산 능력에는 높은 비용이 들었지만 무어의 법칙을 생각하면 10년 이내 계산에 필요한 비용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생각됐다. 비용이 내려갈 때까지 스미스는 영화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다.

당시 애니메이션에 그린 그림을 포함할 수 없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등장한 건 컴퓨터에서 2D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다음 등장한 가상 3D 개체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스미스는 이런 개체를 이동하거나 렌더링하거나 음영 처리할 방법을 배웠다.

이 방법은 이들 사이에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1975년 뉴욕공대와 유타대학에서 3D 기하학적 객체를 구축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종사하던 애드윈 캣멀(Edwin Catmull), 말콤 알리슨을 고용한 뒤 팔로알토연구소에서 페인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데이비드 디프란세스코(David DiFrancesco) 등을 추가했다. 이들 4명은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을 컴퓨터에 통합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셀 애니메이션이라는 수법은 1915년 개발됐지만 애니메이션 작성에 많은 재능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스미스 일행은 셀 애니메이션 작업을 컴퓨터에 의해 쉽게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4년간 기술을 개발했다. 수십 명 연구팀이 1979년 22분 단편 애니메이션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 짧았을 뿐 아니라 셀 대부분은 여전히 손에 의지했다.

1980년 처음 소프트웨어 개발에 종사한 이들 4명은 루카스필름 내에 신설한 컴퓨터 부문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편집과 음향, 특수 효과 그리고 회계 업무도 포함했다. 또 스미스는 특수 효과를 담당하는 컴퓨터 그래픽 그룹을 맡았다.

스미스는 루카스필름에서 컴퓨터에서 생성된 3D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계속해 특수 하드웨어인 픽사 이미지 컴퓨터를 설계했다. 이 컴퓨터는 일반적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 컴퓨터보다 4배 속도로 계산 가능한 대용품이었다.

이 픽사 이미지 컴퓨터를 이용해 스미스 등이 처음으로 완전히 컴퓨터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은 1982년 영화 스타트렉II 칸의 분노에 등장한다. 1분간 영상에서 행성이 불타 녹아 산과 바다, 숲이 형성되는 모습을 비춘 것. 이 다음에 스미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은 스타워즈 에피소프6 제다이의 귀환에서 데스스타 홀로그램 장면에 사용됐다. 이런 몇 분 안 되는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영화에는 아직 못 미치는 것이었지만 스미스 등은 무어의 법칙을 믿고 몇 년이면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미스 등 컴퓨터 부문은 40명 그룹으로 성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실적이 좋지 않다고도 평가했다.

그러던 중 1983년 루카스필름 대표인 조지 루카스가 이혼했고 그가 거주하던 캘리포니아 법에 따라 루카스는 하루아침에 재산 절반을 잃게 됐다. 이 영향으로 컴퓨터 부문은 루카스아츠가 되는 게임 프로젝트를 빼고 모두 판매되는 단계가 1985년 스미스 등 그룹만 남는 결과가 됐다.

스미스는 에드윈 캐트멀 사무실에 가서 자신들 모두는 해고될 수 있다며 조지 루카스는 결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 이상 우릴 먹일 여력도 없다면서 팀을 먹여 살릴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당시만 해도 중간 관리자가 갖춘 것 이상 지식과 감각은 갖고 있지 않았고 이후 창업 관련 서적을 1인 2권씩 사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들 2명은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화 전문 독립 기업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이해하고 소프트웨어 기업 심지어 광고 제작사도 40명을 먹일 이익 창출이 어렵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이들이 뽑은 노선은 하드웨어였다.

다행스럽게도 스미스 등은 픽사 이미지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에 스미스와 캐트멀은 이를 픽셀용 슈퍼컴퓨터로 제조, 판매하는 사업 계획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팀을 5년에 걸쳐 성장하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계획이었다.

먼저 스미스는 나머지 직원 38명에게 직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회사를 소유할 걸 강조하고 사업 계획을 설명했다. 이어 스미스와 캐트멀은 자금 조달을 시작한다. 스미스 등은 벤처캐피털에 접근해봤지만 잘 되지 않고 대신 대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는 방침으로 전환했다. 스미스 등이 진지하게 논의한 10곳 중 8곳은 거절했고 나머지 2곳인 제너럴모터스, 필립스와는 공동 계약 체결 직전까지 도달했다.

스미스 호소에 응한 제너럴모터스에 합병된 EDS(Electronic Data Systems) 창업자이자 제너럴모터스 경영진에도 이름을 올린 로스 페로다. 제너럴모터스는 스미스 등 기술을 산업용 점토로 만들어진 클레이 모델링을 신차 설계를 위한 새로운 기술로 주목했다. 또 제너럴모터스와 제휴해 자금 부담을 분담하게 된 필립스는 CAT 스캔을 통해 인간 내부 3D 구조를 생성하는 렌더링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스미스 등은 1985년 11월 7일자로 제너럴모터스, 필립스와 계약서에 서명했지만 이 계약이 최종 체결될 수는 없었다. 페로가 서명 3일 전 제너럴모터스와 퓨즈도구 기업간 거액 거래에 대해 제너럴모터스 이사회를 비판헀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를 보도하면서 페로는 제너럴모터스에서 나가야 했다. 2개사 계약은 스미스 일행이 마지막으로 믿고 의지한 것이어서 스미스와 캐트멀은 냉정함을 잃었지만 스미스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게시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는 애플 창업자 중 하나는 스티브 잡스의 존재였다.

서명 3개월 전인 8월 4일 스미스와 재무담당자는 애플에서 추방된 직후 잡스의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 저택에 초대받아 인수 상담을 받고 있었다. 스미스 등은 직접 회사를 경영하고 싶었기 때문에 인수를 거절하고 투자 계약을 요구했고 잡스도 이에 응했다. 하지만 계약 금액은 제너럴모터스, 필립스와 비교하면 3분의 1이었기 때문에 스미스 일행은 잡스와의 게약을 중시하지는 않았다.

제너럴모터스, 필립스와 계약이 파탄이 나면서 잡스에게 문의해 계약을 의뢰했는데 이게 실현에 이르게 된다. 잡스는 픽사에 자금을 제공하고 지분 70%를 취득했고 스미스 등 직원이 나머지 30%를 취득했다. 그리고 스미스는 잡스로부터 받은 수표로 픽사 이미지 컴퓨터 등 권리를 루카스필름에서 구입했다. 1986년 2월 3일 캘리포니아에서 픽사가 정식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후 픽사는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된 룩소2세(Luxo Jr.), 레드의꿈(Red’s Dream),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틴토이(Tin Toy), 닉낵(Knick Knack)이라는 4개 작품을 만들었다. 스미스는 이들을 빛나는 4가지 보석이라고 부르고 우리에겐 어려운 것이었고 몇 년간 지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 애니메이션 곳곳에선 픽사 기반이 되는 기술 향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룩소2세는 여러 광원으로부터 그림자를 붙인 첫 번째 관절 물체, 레즈드림 배경으로 등장하는 자전거 가게는 픽사 이미지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복잡한 렌더링 영상이었다.

스미스는 5번째 보석이라고 부르는 스미스 등이 뉴욕공대에서 셀 애니메이션에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디즈니를 위해 만든 소프트웨어인 CAPS(Computer Animation Production System)다. 이 소프트웨어 제작에 디즈니와의 관계가 깊어지고 이후 몇 년 동안 발표한 18개 디즈니 장편 영화는 디즈니에 의해 만들어진 복잡한 제조 공정과 픽사 이미지 컴퓨터, CAPS를 이용하게 됐다. 1989년 공개된 인어공주는 CAPS를 이용한 첫 작품이며 1990년 공개된 구조대(The Rescuers)는 처음으로 전편에 걸쳐 CAPS를 사용했다.

6번째 보석은 렌더맨(RenderMan). 렌더맨은 픽사 직원이 유타대학에서 축적된 셰이딩 기술에서 셰이딩 언어를 일반화해 렌더링을 용이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그룹으로 개발하고 애니메이션 픽셀 생성 등을 실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미스는 픽사가 여전히 형편없는 하드웨어 기업이었다고 말한다. 스미스 등은 창업 1년 만에 여러 실패를 경험하고 자금이 부족해 직원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됐다. 잡스는 그때마다 수표를 끊었고 잡스는 픽사에 몇 번이나 대출을 실시해 최종적으론 재산 절반을 픽사에 쏟았다. 1991년 3월 6일 잡스는 픽사를 완전히 인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사는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다. 스미스는 TV 광고 제작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올리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경영에 필요한 자금 조달 정도는 아니었다.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컴퓨터 기업 넥스트(NeXT)와 픽사를 합병할 생각이었지만 넥스트 공동 설립자가 합병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미스 일행은 결국 무어의 법칙에 의해 전기를 맞이한다. 컴퓨터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기다리던 영화가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게 된 것. 스미스 등은 영화를 만드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캐트멀은 1991년 7월 디즈니와 영화 계약을 맺었다, 스미스 등에게 1970년대부터 꿈이자 목표이기도 한 영화가 마침내 실현할 때가 된 것이다. 또 이 무렵 잡스와 스미스 사이에 불화가 생기면서 스미스는 픽사를 떠나야 했다.

1991년부터 4년간 픽사는 토이스토리를 완성시켜 1995년 처음 공개했다. 토이스토리는 개봉 직후부터 큰 성공을 거뒀고 평가도 뜨거웠다. 당시 픽사는 고장난 하드웨어 일부를 팔아 얻은 돈 이외 대부분 자금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잡스는 1995년 11월 29일 주식을 공개했다. 이후 2006년 디즈니가 픽수를 인수했다.

스미스는 1970년대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의 첫 상황에서 볼 때 이는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픽사는 이후 벅스라이프나 몬스터주식회사 등 24개 작품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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