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노동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정부가 무상으로 금전을 제공해 사람들이 더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려는 사회보장제도인 것.
기본소득은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현금을 계속 지급한다는 구상이다. 이미 18세기 사상가인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이 주장했고 60∼70년대에도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기본소득을 두고 일하는 의미를 잃게 만든다든지 일하는 사람이 줄고 국가 경제에 타격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반대로 무의미한 노동을 줄이는 한편 사람들이 좀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기본소득은 실험중이다. 캐나다에선 1974년부터 1979년까지 1,000가구를 대상으로 현금을 지급한 민컴(Mincome)이라는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근무시간이 실제로 줄어든 건 남성은 1%, 기혼여성은 3%, 미혼여성은 5%에 그쳤다고 한다. 노동자는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었고 자녀의 학력은 올랐다. 병원에 가는 빈도가 줄고 보건 의료 시설에도 정신 건강과 관련한 불만 건수가 주는 등 긍정적 효과가 많았다. 물론 이 실험은 캐나다 정권이 바뀌면서 도중에 중단되면서 최종 실험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매니토바대학 경제학자인 이블린 L.포켓(Evelyn L. Forget)은 지난 2011년 실험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The town with no poverty)를 공개하면서 기본소득 도입이 빈곤을 없애고 다른 문제를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스위스에선 일률적으로 월 2,500스위스 프랑(한화 274만원대)을 기본소득으로 보장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를 실시했다. 스위스에선 이미 2013년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기본소득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난 바 있다. 당시 기본소득 보장 제도안은 성인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매달 2,500스위스프랑, 미성년자라면 625스위스프랑을 지급하는 형태다. 이 제도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은 세금을 통해 조달한다. 또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기존 사회보장제도 일부는 멈추고 소득 보장 제도를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에 필요한 비용 중 4분의 1은 기존 사회보장제도에서 충당한다. 또 복잡한 사회보장제도를 단순한 기본소득을 담보로 한 소득 보장 제도로 일원화, 행정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6월 5일 실제로 진행된 국민투표에선 스위스 23개주 득표 결과 찬성 23.1%, 반대 76.9%로 나타났다. 정치인 중에서도 기본소득 제도 도입을 지지하는 움직임은 거의 없는 등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2017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선 생활 보호 대상자를 대상으로 현금을 무상 지원하는 대규모 실험 진행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진행된 실험이 캐나다와 달랐던 점은 한정된 사람에게만 자금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생활보호자 중 성인에게 1,000달러, 유부남이거나 자녀 등이 있다면 1,450달러를 매달 무상 지급하는 것이다. 실험에 참여한 건 위트레흐트 시민 300명이다. 이들은 모두 수입 등에 따라 3개 그룹으로 나뉜다. 이들 그룹마다 다른 규칙을 마련했다. 피험자 중 50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도 무조건 지급하는 식이다.
핀란드도 실험을 시작했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한 기본소득 실험은 성인남년 25∼58세 중 일자리에 종사하지 않는 2,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 매달 560유로(한화 71만원대)를 무상 지급하는 것이다. 물론 핀란드는 실업 급여 같은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있지만 이 제도는 실험 기간 동안 취업을 해도 장려금 명목으로 돈을 계속 받을 수 있다는 게 차이다. 실업급여 같은 수급 방식도 아니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보고할 의무도 없다. 물론 일자리를 갖지 않아도 무방하다. 돈은 어디에 써도 자유다. 다만 이전까지 받아오던 기존 사회복지제도 혜택은 모두 받을 수 없다.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제도 실험에 나선 이유는 정부기관 업무 감소와 동시에 빈곤층을 줄이는 한편 실업률을 개선하겠다는 데에 있다. 핀란드 내 실업률은 8.1%다. 하지만 기존 복지제도 혜택을 받는 사람의 경우 수입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보조금도 받지 못하게 된다. 되려 일자리를 가져보려는 의욕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지원금을 반환하지 않도록 한 것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아직까지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반년 후 이뤄진 간이 조사에선 참가자의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구직 동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도 기본소득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온타리오 해밀턴의 경우 기본소득 시험 도입 프로그램을 실시, 거주자 4,000명에게 매월 일정액을 지급하고 있다. 해밀턴 외에도 선더베이, 린제이 등 3곳에서 기본소득 시험 도입 프로그램이 이뤄지고 있다. 무직이면서 독신 수급자라면 연간 1만 6,989캐나다 달러를 받고 부부는 2만 4,027캐나다달러를 받을 수 있다. 또 일에 종사하고 있다면 매월 200캐나다달러 이상 번다면 지급액은 50% 줄어들 수 있다. 지급액은 캐나다 연봉 중간값을 정확히 2등분한 것이라고 한다.
온타리오에 이뤄지는 기본소득 시험 참가자들은 기존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뤄진 사회보장제도를 받기 위한 절차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또 기본소득 덕에 개인 자유 시간을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
기본소득 시험 도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입 등 기본 정보를 서류에 기입하고 45분 가량 걸리는 설문조사를 작성한 뒤 은행계좌정보 등을 적고 진행 동의서에 서명하면 된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비해 훨씬 간단한 것이다.
온타리오에서 이뤄지는 기본소득 시험 프로그램에는 5,000만 캐나다달러가 지급된다. 시험을 통해 연구자들은 피험자를 추적해가며 기본소득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게 된다. 건강 개선 여부나 보험 서비스 이용 빈도가 줄어드는지,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 등은 물론 프로그램 관리에 얼마나 비용이 들어가는지 여부도 꼼꼼하게 조사를 하게 된다.
대표적인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 역시 미국 오클랜드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수십 가구 정도를 대상으로 매달 1,000∼2,000달러를 제공한다. 2018년부터 이뤄질 본격 실험에선 21∼40세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2개주에서 900명에게는 3년간 매달 1,000달러, 100명에게는 5년간 매달 1,000달러, 1,800명에게는 3년간 매달 50달러, 200명에게는 5년간 매달 50달러를 제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스톡턴(Stockton)이라는 도시도 올해부터 주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제도 시험 운용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도시는 SEED(Stockton Economic Empowerment Demonstration)라는 프로그램을 정부 지원 하에 진행한다. 전체 진행 기간이나 인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주민 중 일부를 선발해 매달 500달러, 연간 6,000달러 기본 소득을 지급할 예정이다.
스톡턴의 경우 2012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재정 파탄 도시였다고 한다. 실업률도 7.3%로 미국 내 평균 4.3%를 웃돈다. 평균 연봉도 4만 4,797달러로 캘리포니아 평균 연봉 6만 1,181달러보다 낮다. 범죄율도 높다. 기본 소득 실험을 진행하려는 이유는 이런 빈곤이나 불평등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이콤비네이터 CEO인 샘 알트만은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존재함에도 꾸준한 관심이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일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 인공지능 등 기술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면 지금 당장 생존을 위해 일을 한다면 앞으로는 일의 의미 자체가 바뀌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샘 알트만은 앞으로 50년 뒤에는 예전 사람들이 굶주리는 걸 두려워했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일할 필요가 없어지면 사람들이 어디에 시간을 할애하게 될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 실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