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전선 같은 배전 설비를 통해 가정으로 보내진다. 물론 전력 수요가 높아지면 전력을 공급하지 못할 위험이 생기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낮은 위치에 있는 저수지 물을 일시적으로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려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양수식 수력 발전 시스템을 활용하기도 한다. 댐을 만들어 전력 수요가 많을 때에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을 흘려 정상적(?)으로 발전을 하다가 수요가 줄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다시 물을 끌어 올려서 전력 수요에 대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수식 수력 발전을 하려면 지형 제한을 해결해야 한다. 저수지 2개가 필요한 셈이어서 건설비용도 높아진다. 그런데 스위스 스타트업인 에너지볼트(Energy Vault)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콘크리트 배터리를 개발해 눈길을 끈다.
에너지볼트가 개발한 콘크리트 배터리의 구조는 사실 앞서 설명한 양수식 수력 발전과 다를 건 없다. 다만 물과 댐 대신 콘크리트 블록과 크레인을 쓴다는 게 다를 뿐이다. 콘크리트 배터리는 양수식 수력 발전에서 사용하는 물 대신 콘크리트로 만든 블록을 높이 쌓고 전력 수요가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쌓아둔 콘크리트 블록을 크레인으로 차례로 바닥으로 내린다. 블록을 바닥에 떨어뜨릴 때 발생하는 낙하 에너지를 전력으로 삼는 것.
콘크리트 배터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전력 효율이다. 지금까지 나온 배터리 중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은 건 리튬이온 전지로 충전량 중 90%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콘크리트 배터리는 블록 운반에 필요한 전력대비 바닥에 떨어뜨릴 때 생성하는 전력이 85%다. 리튬이온 전지와 거의 비슷한 에너지 효율을 갖췄다는 얘기다.
에너지볼트가 데모로 구축한 콘크리트 배터리는 높이 20m에 콘크리트 블록을 올리고 내릴 크레인 1대로 구성되어 있어 많은 전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에너지볼트 측의 구상에 따르면 실제로 건설할 콘크리트 배터리는 높이 120m에 크레인 수도 6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시설을 이용하면 만들어낼 수 있는 전력량은 시간당 최대 20mW라고 한다. 이 정도면 스위스 내 일반 가정 2,000곳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콘크리트 배터리의 또 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는 전력 공급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 발전용 리튬이온 전지의 경우 1kW당 280달러에서 350달러 사이지만 콘크리트 배터리는 150달러로 추정된다고 한다. 반값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콘크리트는 리튬이온 전지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시설을 구축할 때 들어가는 비용 면에서도 유리하다. 블록에 이용하는 콘크리트는 건설 공사 등에서 나온 걸 재활용하면 재료비용을 더 아낄 수 있다.
콘크리트 배터리 기술은 하드웨어 자체만 보면 새로울 건 없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콘크리트 블록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면 바람의 영향 탓에 블록이 흔들리고 블록은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전력을 소모하게 된다. 에너지볼트 측은 크레인 제어 프로그램으로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구조를 구현했고 바람의 영향을 조금 받아도 지장을 덜 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물론 콘크리트 배터리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 당장은 전력 공급 비용이 낮지만 리튬이온 전지는 미래에는 1kW당 10달러까지 비용이 떨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에너지볼트 입장에선 전력 공급 비용을 더 낮출 방법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지만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낮에 축적해둔 전력을 그대로 전력 소비가 많은 시간대로 옮겨주는 피크 시프트(peak shift)를 위한 에너지 축전술, 배터리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테슬라가 가정용 배터리인 파워월이나 파나소닉과 공동으로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건설한 것도 이런 중요성을 말해주는 예 가운데 하나다.
최근에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망간수소 전지를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이 개발하기도 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발전한 전력을 저장해둘 배터리가 중요하다. 미국 에너지국은 시간당 적어도 20kW 전력을 축전하고 5,000회 이상 충방전을 할 수 있고 10년 이상 수명을 가진 전지 실용화를 2,000달러 이하에 개발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kW당 100달러 정도 저렴한 가격인 배터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리튬이온 전지의 경우 희소 금속이나 희토류를 이용하는 탓에 비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저렴한 망간을 이용한 망간수소 전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은 망간 이온과 이산화망간을 양극 사이에서 순환시켜 전자를 나르는 망간수소 전지를 개발했다. 망간수소 전지는 당연히 충전도 할 수 있는 2차 전지이며 배터리 용액은 저렴하게 양산할 수 있는 황산망간을 이용한다. 또 100W 전구를 12시간 비추는 데 필요한 비용이 1페니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망간수소 전지는 크기가 7.6cm 가량으로 20mWh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상태이며 1만 회 이상 충방전이 가능한 내구성을 갖추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실용화 수준 규모로 전력을 저장, 에너지 절약 목표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저비용에 긴 수명 등 실용성을 갖춘 망간수소 전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편으로는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서 가까운 안후이성에선 수상에 태양광 패널을 깔아서 40mW급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는 수상 발전 시설이 건설되어 지역 내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중국 태양광 솔루션 기업인 선그로우(SunGrow)가 구축한 것으로 육상이 아닌 태양광 발전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이 지역에선 이미 20mW급 시설을 운용 중인 상태였고 중국 뿐 아니라 인도에서도 100kW급 수상 태양광 발전 시설이 건설 중이다. 중국의 경우 거국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지상에 건설한 태양광 발전 시설의 경우 27km2에 달하는 면적에 850mW급이라고 한다.
수상 태양광 발전의 경우 육상보다 시공이나 관리를 위한 장애도 더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육상에 대규모 시설을 건설하면 경제 활동 등을 억제하는 물리적 장벽이 되어버리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도시 지역과 가까운 수상 지역에 건설하면 도시에 전력원을 추가하기 쉬워진다는 장점도 있다. 넓은 면적을 태양광 패널로 덮으면 수분 증발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육상보다 외부 온도가 낮아 태양광 패널 수명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 태양광 발전 능력은 기후나 일조량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안정적인 전력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기존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을 보완해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리튬이온이나 앞서 밝힌 망간수소 전지 등을 활용해 전력을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전력망에 공급해주는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 테슬라가 태양광 뿐 아니라 축전 시설을 함께 곁득여 섬 전체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충당할 수 있게 한 게 예가 될 수 있다. 테슬라는 태양전지 패널 5만 5,000장을 이용하고 여기에 자사의 배터리인 파워팩(Powerpack) 272개를 이용해 인구 6만 7,000명인 섬 전체에 전력을 밤낮 없이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지구 인구는 75억 명 수준에 이르지만 오는 2100년에는 100억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기존 같은 화석 연료나 원자력에만 의존하는 에너지 전략은 한계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신재생에너지나 서두에 밝힌 콘크리트 배터리 등 지속 가능한 에너지와 축전술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