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에 군사 작전에서 채취된 뒤 수십 년 동안 계속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던 병에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대한 중요한 새로운 정보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국립과학원 회보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에 1.6km 두께 얼음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에서 발견된 식물 화석은 인류가 나타나기 전 세계에 그린란드 빙상을 완전히 없앨 만큼 따뜻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이 연구는 그린란드 대부분을 덮는 얼음에 구멍을 뚫어 채취해 퇴적물을 조사했다고 한다. 버몬트대학 연구팀은 얼음 압력이 강하기 때문에 암반까지 도달해 샘플을 채취하는 건 곤란하고 빙하 바닥에서 퇴적물을 채취한 조사대는 손에 꼽을 수준이라면서 월석보다 이런 퇴적물이 더 적을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샘플에는 많은 식물이 포함되어 있고 이 중에는 육안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숲으로 하이킹을 나가서 부츠 바닥에 많이 붙는 잔가지나 근처에 널려 있는 작은 게 붙는데 이런 걸 100만 년 전 얼어버린 땅에서 발견한 셈이라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다양한 원소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샘플이 마지막으로 태양과 우주선에 노출된 시기가 밝혀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 식물은 100만 년 전 것과 같았다고 한다. 100만 년은 빙하기 10회분이다.
이번 샘플을 분석하기 전에도 그린란드 빙상이 일단 완전히 녹아 있었던 걸 보여주는 정황 증거는 있었다. 하지만 물리적 증거가 아니라 이번 화석 발견은 여러 식물이 서식하고 얼음이 없는 시대가 그린란드에 있었다는 걸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린란드 얼음이 완전히 녹아버리면 해수면은 6m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바로 기후 변화 시한폭탄인 셈. 현재 빙상은 1980년대보다 6배 속도로 녹고 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증가에 기인한 변화에 기후가 적응하고 새로운 평형 상태가 될 때까지 수세기가 걸릴 전망이다. 빙상의 역사를 아는 건 빙하의 미래를 아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후 시스템 하에서 그린란드 빙상이 완전히 녹아버렸다.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하기 전에 기후조차도 얼음을 녹일 수 있었다. 앞으로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면 어느 시점에는 그린란드 빙상이 임계값을 초과해 강제로 해수면을 상승시켜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샘플은 1966년 캠프 센추리(Camp Century)라는 미국 비밀 군ㅇ사 시설에 원정했을 당시 그린란드에서 처음 채취한 것도 있다. 원정 목적은 핵미사일을 당시 소련의 얼음 아래 쪽에 숨길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샘플은 버팔로대학 군사 냉동고 속에 옮겨졌고 1990년대 덴마크 연구 시설 냉동고로 옮겨졌다. 2017년이 되어서 연구팀이 해당 시설 냉동고를 옮기기 위한 재고 조사를 하다가 샘플을 발견해 자세한 분석을 실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