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차량이 교통사고를 냈다. 3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템피에서 도로 주행 시험을 진행하던 우버 자율주행 차량이 도로를 횡단하던 49세 여성을 치어버린 것. 이 여성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곧 사망했다. 그녀는 자전거를 끌고 도로를 횡단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우버 측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보조 운전자로 태워 관리 하에 주행 시험을 실시 중이었지만 비상 정지 조치가 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고 이후 우버는 피츠버그와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피닉스 등 도로상에 실시하던 자율주행 차량 시험을 모두 중단시키고 트위터를 통해 피해자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번 사고가 자율주행 차량 관련 첫 사고는 물론 아니다. 지난 2016년 테슬라의 오토파일럿(Autopilot)을 이용하던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하지만 보행자가 희생된 사망 사고는 미국에선 처음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신뢰할 만한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새로운 기술이 나올 경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 이번 사고는 자율주행 차량이 아직 안전성을 확보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키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자율주행 차량을 도로에서 보는 일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인간이 내는 것보다 많고 적음의 문제만 있을 뿐 교통사고는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운행을 시작한 자율주행 셔틀버스의 경우 운행 첫날 1시간 만에 대형 트럭과 접촉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5명을 태우고 라스베이거스 시가지를 자동 주행, 순회하던 셔틀버스는 프랑스 대중교통 기업인 키올리스(Keolis)와 미국자동차협회, 라스베이거스 시 당국이 공동 운영하는 것으로 프랑스 스타트업 나브야(Navya)가 개발한 것이다. 이 차량은 최고 속도는 45km/h지만 평균 25km/h 저속으로 달린다. 또 차량 컴퓨터가 도로 상황을 확인하면서 미리 지정한 구간을 순회한다.
교통사고는 주행 중이던 전방에 있는 트레일러를 장애물로 인식, 정지했지만 트레일러가 후진을 하면서 부딪치면서 발생했다. 사고 당시 승객이 몇 명 타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당시에 다친 사람은 없다. 경미한 교통사고다 보니 트레일러 운전자가 벌금을 내는 수준에서 끝났다고 한다.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랫동안 자율주행 차량 개발해온 구글이 처음으로 과실을 인정한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구글은 2015년부터 본격적인 도로 주행 시험을 실시해왔다. 그런데 2016년 2월 14일(현지시간) 구글 차량이 시험 운행 중 버스와 충돌 사고를 일으킨 것. 사고 당시 전방 교차로를 우회전하려고 대기 중이던 다른 차량이 있었다. 자율주행 차량은 직진 차선에서 우회전 차선으로 이동하려다가 모래주머니를 발견하고 일단 멈춘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고 자율주행 차량은 뒤로 물러나 직진 차선에서 다시 모래주머니를 피하려 했지만 버스가 후방에서 직진 차선으로 오면서 자율주행 차량과 충돌한 것이다.
이 사고는 구글이 자율주행 차량의 과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전에도 가벼운 사고는 일어났지만 교통당국 조사에서 대부분 자율주행 차량과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7월 구글 차량에 발생한 사고를 알 수 있는 영상을 보면 자율주행 차량이 인식하는 교통 상황을 볼 수 있다. 영상을 보면 자율주행 차량은 주위 상황을 다각형으로 인식하는데 앞선 차량이 교차로에서 정차한 걸 확인하고 천천히 멈춘다. 그런데 자율주행 차량 뒤에 있는 차는 멈추지 않고 차간 거리를 좁히면서 결국 추돌. 자율주행 차량이 반동으로 흔들리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당시에도 사람의 실수로 인한 것이었다. 다만 자율주행 차량만의 안전성만 확보한다고 해도 다른 ‘인간’ 운전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이렇게 인간 운전자에 대한 대응 문제 외에도 자율주행 차량 자체로 인한 사고도 발생 빈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 고속도로에선 정차 중이던 소방차에 테슬라 모델S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오토파일럿 기능을 이용 중이었던데 모델S 후드 절반이 소방차 아래에 깔렸다. 기적적으로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고 분석 과정에서 테슬라를 비롯한 제조사의 자율주행 시스템 대부분이 정지 중인 차량을 인식할 수 없다는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실제로 테슬라 역시 모든 물체를 인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주차된 차량을 감지해 브레이크나 감속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80km/h 이상으로 주행하다가 차선을 변경했는데 정지 차량이 나타난 상황에선 더 두드러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조건은 볼보의 자율주행 기능인 파일럿 어시스트(Pilot Assist) 역시 마찬가지다. 크루즈 컨트롤을 더해 선행 차량과의 차간 거리를 계산해 유지하고 운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차량 높이가 낮은 트레일러나 저속 차량 혹은 정지 중인 차량이나 물체가 있다면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미끄러운 노면이나 움푹 파인 노면, 눈이나 진흙으로 뒤덮인 노면, 폭우나 눈속에서 주행할 때에도 이 같은 자율주행 기능은 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온 반자율주행 기능은 어디까지나 어시스트, 지원 기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시스템이 전방 주행 차량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운전자가 차량을 조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시 사고는 자율주행 차량용 센서에 뜻밖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물론 자율주행 차량이 멈춰있는 차량을 인식,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다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는 하드웨어의 한계가 한 몫 한다. 아직까지 시중에 나온 자율주행 차량은 차체 주변을 인식하는 센서로 레이더와 카메라를 이용한다. 하지만 레이더는 움직이는 걸 인식할 수 없고 멈춰 있는 차량은 물론 도로에 떨어진 장애물을 인식할 수 없다.
이유는 이렇게 멈춰 있는 물체까지 인식하기에는 컴퓨팅 처리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차량이 달리는 중이라면 레이더에 포착한 거의 모든 걸 인식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도로표지판과 신호, 가드레일 등 도로에 고정되어 있는 건 인식하지 않고 주위를 달리는 그러니까 움직이는 물체나 차량만 인식한다. 이런 상황을 확인하면서 반자율 주행을 하는 것이다(적어도 지금은).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많은 레이저광을 조사해 떨어져 있는 물체와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라이더(LIDAR)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라이더는 일반 차량에 탑재하게는 가격이 비싸다. 그 뿐 아니라 내충격성은 물론 날씨 영향 등 성능 역시 실용화에 필요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문제도 있다.
라이더 센서의 보안 취약점을 지적하는 문제도 있었다. 저출력 레이저와 펄스 발생기를 이용해 가짜 전파를 흘려 라이더 센서가 수신하도록 해 자율주행 차량이 주위에 마치 다른 차량이나 보행자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해 차량을 멈춰버리게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취약점을 이용하면 차량이 주위 상황을 오인해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멈춰버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자율주행 차량이 급정지하면서 다른 인간 운전자가 탑승한 차량과 충돌,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라이더를 실용화하더라도 성능 자체가 완전한 게 아닌 만큼 기존 센서와 카메라를 함께 써야 하는 건 물론이다. 이런 문제로 레벨5 그러니까 완전 자율주행 실현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많은 셈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GM의 자율주행 기능을 시험하던 시보레 볼트가 자전거로 주행 중이던 남성과 접촉 사고를 내기도 했다. 남성 앞으로 달리던 자율주행 차량이 차선을 이동하자 자전거가 추월하려 했지만 차량이 다시 원래 차선으로 돌아오면서 접촉 사고가 발생했고 남성이 넘어지면서 목과 어깨에 부상을 입은 것이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시험 관리공단 DMV가 올해 4월부터 일반 도로에서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 차량 시험 주행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차량에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은 자율주행 차량 주행을 허용한 건 처음이다. 이에 따르면 시험 주행 차량에 사람이 타지 않더라도 원격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원격 조작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다. 또 사고가 일어나면 경찰이나 관리자와 연락을 취해야 하는 조건도 있다.
이번 사고가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율주행 차량 보급을 촉진하려면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차량을 원격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분야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팬텀오토(Phantom Auto. https://phantom.auto/) 같은 기업은 자율주행 시스템이 고장 나면 원격 조작을 통해 운전을 해주고 사람이 잘못 운전할 것으로 예측되면 원격 조작 전환이 가능하도록 하려 한다. 말하자면 항공교통관제처럼 자율주행 차량을 위한 원격 통제 시스템 같은 것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이런 조치를 통해 오는 2019년까지 운전자 없는 차량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GM이나 구글 산하 웨이모 등이 자율주행 차량을 이용한 도로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자율주행 차량 주행 테스트 실시 허가를 받은 곳만 해도 50개사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 차량은 늘어나고 있다. 물론 덩달아 안전 관련 기술도 꾸준히 확보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안전한 쪽으로 바뀌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제로가 되지 않는 한 윤리적 문제에 대한 딜레마는 여전할 수 있다. 이른바 트롤리 딜레마(trolley problem)가 대표적이다. 차선을 달리선 차량을 통제할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그대로 놔두면 끝쪽에 있는 사람 5명이 죽는다. 차선을 바꾸면 되지만 이렇게 다면 다른 한 쪽에 있는 사람 1명이 죽는다. 그렇다면 누굴 살리고 누굴 죽여야 할까.
단순하게 보면 5명을 살리고 1명을 죽이는 쪽이어야겠지만 도덕적 딜레마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운전할 때에는 운전자의 도덕심이나 순간적인 판단력 등이 복잡하게 얽히는 문제다. 하지만 자율주행 차량이라면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고리즘화해야 한다. 룰세팅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우버 사고는 자율주행 차량의 기술적 완성도와 보완점을 말해주는 동시에 자율주행 차량 시대를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