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깨끗한 전력을 제공하는 차세대 원자로는 어떤 게 될까.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면 2021년 어느 시점에는 미국 아이다호 동붕에 거대한 구멍 시추 작업이 시작된다. 구멍을 파는 곳은 아이다호 원자 시티에서 멀지 않은 위치로 마을 주민은 30명 미만이다. 이 지역에서 유일한 주유소에선 더 이상 가스를 팔지 않는다. 원자 시티는 1950∼1960년대 정부가 자금을 제공한 핵 연구 프로젝트로 번창한 마을에서 원자력 잠수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원자로와 원자력 발전소 전력 공급을 위한 원자로 로 개발되어 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일어난 붐은 이미 쇠퇴하고 마을에서 개발된 원자로 대부분은 이미 운용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다호극립연구소 INL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첨단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 원자 시티에 건설할 예정이다.
INL의 차세대 원자로 개발 프로젝트는 상상할 수 없는 고온에서 작동하며 물 대신 헬륨가스나 액체 금속 등을 이용해 냉각되는 독특한 원자로다. 또 도시 바로 옆에 건설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며 효율적이기 때문에 거의 무한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사회에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선 원자력 발전소가 국가 전력 중 20%를 공급하고 있지만 현재 작동 중인 원자로 대부분은 1970년대까지 업계 표준이던 보수적인 수냉 디자인을 채용한 것이며 실제로 많은 원자로가 1970년대에 건설됐다. 미국 핵 인프라는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지만 첨단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수압균열법(Hydraulic fracturing)이 천연가스 가격을 낮추고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해선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부여해 원자력 발전소가 반드시 경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건 아니게 됐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오래된 원자력 발전소 일부가 폐쇄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반면 INL이 아이다 원자시티 근처 사막에 건설 예정인 원자력 발전소는 기존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돔 모양 형상이 될 수는 없다. 보통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경우 발전소 건설 작업은 몇 년이 걸리는 힘든 작업이다. 반면 INL이 건설하려는 차세대 원자로는 버지니아에 있는 공장에서 제조된 걸 그대로 옮겨오기만 하면 끝난다. 작업자는 발전소에서 원자로 다양한 구성 요소를 연결하기만 하면 완성된다. 원자로 크기는 폭 4.6m, 높이 22.9m로 매우 작다.
버지니아 공장에서 생산되는 소형 원자로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 SMR이라고 부른다. 또 INL의 원자로 개발 프로젝트에 채택된 SMR은 오레건주립대학 연구팀이 발안한 것이다. 발안한 교수는 2007년 오레건주립대학을 떠나 합류해 출범한 누스케일파워(NuScale Power)라는 스타트업이 개발한 것이다. 이 기업은 다양한 종류 차세대 SMR 건설에 나서고 있으며 원자력규제위원회 허가를 받은 첫 SMR을 건설할 예정이다.
누스케일파워가 개발하는 SMR은 단독으로 60메가와트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60메가와트 전력이 있으면 4만 가구에 차질 없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기존 풀사이즈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전력은 1,000메가와트 가량인 만큼 규모가 작은 원자로로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누스케일파워의 SMR은 혼자 작업하는 게 아니라 INL 원자 시티에 건설하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SMR 12기와 함께 운용하게 된다. 또 원자로 콘크리트 홈에는 안전 대책으로 물이 부어진다.
누스케일파워 SMR을 이용한 원자 시티의 차세대 원자력 발전소는 2026년 송전망에 연결되기 때문에 이는 원자력 발전소의 새로운 시대 개막을 알리는 일이 될 수 있다. 또 누스케일파워 SMR은 저렴한 발전 설비를 필요에 따라 추가할 수 있어 원자력 발전소가 발전 능력을 조금씩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누스케일파워 SMR을 이용한 소규모 원자로를 잘 운용하면 덤 낳은 수요를 얻게 될 가능성도 있다. 많은 정치인이나 국가가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이용하던 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만으로 기존 발전량을 대체하는 건 어렵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다른 깨끗한 에너지가 요구된다. 또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 등은 날씨에 좌우되기 때문에 날씨에 좌우되지 않고 안정적 전력을 공급할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또 신재생에너지 지지자조차 기존 에너지원을 신재생에너지로 바꾸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걸 인정한다.
반면 탄소배출량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게 SMR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이다. SMR이 경제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지금까지의 원자력 발전소는 원자로마다 가능하면 크게 만드는 게 요구되어 왔다. 따라서 원자로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과 운전에도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특히나 더 거대한 원자로를 감당하기 어려워한다.
SMR은 기본적으론 기존 수냉 원자로를 작게 한 것이지만 단순화되어 있다. 시스템은 밀폐된 격납 용기 내에서 작동하며 복잡한 배관이나 펌프는 필요하지 않다.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에선 원자로를 정지한 뒤에도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일정한 물줄기를 필요로 하지만 누스케일파워 SMR은 수동으로 차가운 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해 정지 후 물줄기 등으로 냉각 공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또 고장나면 격납 용기 주변에 비축한 물이 열을 빼앗아 탱크가 건조되어 열이 대기 중으로 방출하도록 설계해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다고 한다.
SMR은 또 기존 원자로보다 사용하는 핵연료가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발생하는 열은 훨씬 덜해 전형적인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미 정부 외에도 미국 서부 6개주 공익 사업 컨소시엄이 누스케일파워 SMR을 구입하고 있다.
조지아에 있는 발전소(Vogtle)에 건설 중인 원자로 2개 건설이 크게 지연되고 비용이 초과되면서 건설 시작 후 10년이 지나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저비용 소규모 도입 가능한 SMR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또 누스케일파워 SMR은 기존 상업용 원자로와 활용하는 기술이 비슷하기 때문에 규제 당국 승인을 얻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SMR과 차세대 원자로 개발을 추진하는 게 누스케일파워만 있는 건 아니다. GEH는 발전량 300메가와트짜리 소형 모듈 원자로 BWRX-300을 개발하고 있으며 빌 게이츠가 출범한 차세대 원자로 스타트업인 테라파워(TerraPower) 역시 2022년 완공 예정으로 중국 실증로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차세대 원자로는 다른 잠재 시장도 존재한다. 이는 시멘트와 플라스틱, 비료 등 제조에 고온을 필요로 하는 산업 공정에서의 응용이다. 제조에 고온을 필요로 하는 산업 공정 대부분은 화석연료 연소에서 발생하는 열을 사용하는 반면 소형 고온 발생기로 SMR을 이용할 수 있다면 전력과 열 공급원 등 산업 공정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차세대 원자로에도 문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성가신 규제당국 승인 절차다. 미국에선 오바마 행정부 당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지침을 강화하려 했지만 트럼프 정권 하에선 원자로 연구에 자금을 제공하고 누스케일파워 같은 신생 기업이 규제 당국 승인을 얻기 쉽도록 하고 이 분야에 1억 달러 이상 보조금을 할당했다.
또 다른 문제는 핵 확산 우려다. 하지만 SMR 대부분은 중간에 농축된 우라늄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핵무기 제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소수 차세대 원자로는 더 강력한 우라늄 동위원소를 연료로 취급하기 때문에 핵무기 제조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첨단 원자로는 밀폐되어 있으며 이미 연료로 공급된 상태에서 원자로 장치를 제공할 수 있을 수 있어 핵 확산과 폐기물 관리 등 번거로운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더 많은 원자로 개발 스타트업이 참가하고 정부 주도 프로젝트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적절한 조건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며 미래에는 더 작고 저렴한 원자로가 완성될 가능성도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