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촉각은 몸 피부 전체에 존재하며 뭔가 몸에 닿으면 위치와 압력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리옹제1대학 인지신경학자인 루크 밀러(Luke Miller) 연구팀은 인간은 자신의 피부 뿐 아니라 손에 든 도구에 뭔가 닿아도 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인간의 두뇌가 손에 든 도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인간이 손에 든 도구를 통해 뭔가를 만지고 물체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금 처음 한 건 아니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 역시 장님이 양손에 든 지팡이로 주위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도구를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 광범위하게 연구를 해왔지만 도구를 통해 얻는 감각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연구팀은 과학자 대부분은 도구를 사용할 때 감각적 측면은 무시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연구팀은 실험에서 오른손잡이 16명에게 길이 1m짜리 나무 막대기를 주고 막대기가 피험자에게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2회 연속 닿게 했다. 피험자에게 2번 접촉이 막대기의 각각 다른 위치에 닿았다고 판단되면 아무 것도 반응하지 않고 2회 접촉이 막대기의 같은 위치에 닿았다고 판단하면 접촉 위치가 지팡이를 쥔 손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페달을 한 번, 먼 곳이라면 2번 밟도록 했다.
연구팀은 2회 접촉을 하나로 묶어 모두 400회 실험을 실시해 얼마나 정확하게 막대기에 물체가 접촉한 위치를 판단할 수 있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피험자는 과거 막대기를 사용한 작업에 종사한 경험이 없었음에도 96% 정확도로 물체에 닿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또 일련의 실험에서 피험자 머리에 전극을 붙여 뇌 피질 활동도 기록했다. 동일 자극이 반복되면 해당 감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 신경 반응이 억제되는 건 이전부터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손에 든 지팡이에서 같은 장소를 2번 연속 두드리면 피험자의 차체성 감각 피질과 두정엽 후부 같은 뇌 영역에서 신경반응이 현저하게 억제되는 걸 확인했다고 한다. 이번 실험에선 피험자 뇌가 반응하는 영역은 인간이 자신의 피부를 밟힌 때 반응하는 부위와 같았다.
연구팀은 또 피험자 팔을 접촉했을 때의 자극이 뇌에 전해지는 속도와 막개기를 만졌을 때 자극이 전해지는 속도도 비교했다. 같은 곳을 2번 만졌을 때 기본 체질 감각피질 신경 활동이 억제될 때까지의 시간이 52밀리초. 두정엽 뒤쪽 활동이 억제될 때까지의 시간은 80밀리초로 팔을 만졌을 때나 막대기를 만졌을 때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뭔가 닿았을 때 위치를 감지하는 신경 메커니즘이 자신의 몸을 직접 뭔가 닿았을 때 메커니즘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인간이 손에 든 도구에 닿은 물체 위치를 검출할 때 중요한 건 도구에 전해지는 진동이라고 보고 있다. 도구에서 손에 전해지는 진동을 피부에 존재하는 기계 수용체가 감지하고 1차로 체질 감각피질로 신경신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지팡이를 통해 전달되는 진동은 환자에게 직접 닿은 게 아니라도 막대기 어딘가를 만졌을 때 뇌가 감지하는 데에는 충분하다는 걸 이번 연구가 시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인간의 뇌가 몸 접촉을 감지하는 것과 같은 프로세스를 이용해 손에 든 도구 접촉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감지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보철을 통해 착용자가 얻는 감각에 대해서도 보철 제작자가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