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저작권청은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 예외 규정을 3년마다 검토한다. 10월 28일 발표된 제9차 예외 규정 검토 보고서에서는 맥도날드의 아이스크림 기계를 포함한 업무용 식품 조리 기기를 일반 시민이 수리하는 게 합법화됐다.
미국 연방법전 제17편 제1201조에 성문화되어 있는 DMCA는 저작권으로 보호된 서적, 영화, 게임,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의 저작물에 대한 부정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술적 조치를 우회하는 걸 일반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 조치 우회를 금지하는 게 특정 종류 저작물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사용자 능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그런 사용자에 대한 금지 면제를 검토하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예외 규정을 검토한다.
제9차 예외 규정 검토 쟁점 중 하나가 수리할 권리다. 수리할 권리란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수리를 제조사만 할 수 있다는 상황이 독점금지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의심 하에 수리업체나 소비자 스스로가 수리할 수 있도록 법률적 제한 및 기술과 도구를 개방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2023년 7월 1일부터 뉴욕에서 법제화되거나 2024년 4월 23일에 유럽 의회가 채택하거나 애플과 구글이 지지를 표명하는 등 널리 보급되고 있다.
이 수리할 권리와 관련해 자주 화제가 되는 게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머신이다. 미국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은 전체 상품 중에서도 높은 인기를 자랑하지만 아이스크림 기계 고장 상황을 기록하는 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미국 매장 14.72%에서 아이스크림 기계가 고장 났으며 뉴욕에 한정하면 32% 매장에서 고장이 났다고 한다. 이런 원인에는 특정 수리업체만이 수리 가능하고 매장 측 수리는 불가능이라는 수리할 권리가 관련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선 바 있다.
최신 기기가 출시될 때마다 즉시 분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이픽스잇(iFixit)은 모든 가전제품과 디지털 제품을 사용자가 관리할 수 있도록 수리할 권리 확립을 목표로 미국 저작권청에 청원을 계속해왔으며 제7차 예외 규정 검토에서는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제8차 예외 규정 검토에서는 소비자용 기기, 자동차, 의료기기의 DMCA 적용 제외를 얻어냈다. 아이픽스잇은 2023년 8월경부터 맥도날드의 아이스크림 기계 수리에 대해 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해왔으며 제9차 예외 규정 검토에서 마침내 아이스크림 기계를 자유롭게 수리할 수 있게 됐다고 보고하고 있다.
소매 수준 업무용 식품 조리 기기에는 기계 소프트웨어에 디지털 잠금이 내장되어 있어서 소매점 주인은 스스로 문제 해결이나 수리를 할 수 없었다. 이런 잠금은 DMCA로 보호되어 있어 정당한 수리라도 기술적 보호 수단인 소프트웨어 잠금을 우회하는 건 불법이었다. 하지만 저작권청이 인정한 새로운 면제로 인해 업무용 식품 조리 기기의 소프트웨어 잠금을 합법적으로 우회할 수 있게 됐다. 이 면제는 아이스크림 기계 외에도 업무용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레스토랑 업무용 오븐 등도 포함된다.
한편으로 법률적으로 가능해졌더라도 아이스크림 기계의 수리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아이픽스잇은 지적한다. 디지털 잠금을 우회하는 건 인정됐지만 이 판결은 소프트웨어 잠금을 우회하는 도구 공유나 판매를 불법으로 하는 기본법을 변경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내에 수리 전문가가 있는 회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업무용 식품 조리 기기에 관한 면제는 이론상의 것에 그친다.
또 소매 수준 식품 기기에 대한 면제는 확보됐지만 상업용 및 산업용 기기에 대한 더 광범위한 면제는 거부됐다. 아이픽스잇은 더 광범위한 면제가 없다면 수리 시장 상당 부분은 여전히 제조사에 의해 지배되어 있으며 제조사는 수리 서비스에 법외한 요금을 청구하거나 부품이나 도구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많은 중소기업은 간단한 수리로 곧바로 재가동할 수 있는 경우에도 다운타임과 추가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아이픽스잇 측은 큰 진전을 이뤘지만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자사 제품을 관리하는 걸 방해하는 제도적 장벽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엄중한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산업용 기기에 대한 더 광범위한 면제와 함께 비디오 게임의 디지털 잠금 우회를 허가하는 면제도 아이픽스잇은 이번에 실패한 요청으로 꼽고 있다. 레트로 게임 보존 활동에 힘쓰고 있는 비영리 단체 VGHF(Video Game History Foundation)이 구하기 어려워진 게임 가상 복사본을 온라인으로 대여하는 행위 허가 요청을 실시했지만 이 요청은 미국 저작권청에 거부됐다. 아이픽스잇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대체 입력 방법이 필요한 장애인은 아직도 소외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