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시 측정이나 GPS 계산에 사용되는 원자시계는 오차가 수십만 년에 1초로 매우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교 로잔, 빈 공과대학교,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뮌헨 대학교, IMRA 아메리카 연구자가 공동으로 원자시계보다 더 정확한 핵시계(nuclear clock)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표했다.
예로부터 시간은 지구 자전이나 공전과 같은 기준으로 정의되어 왔다. 하지만 이 천문학적 기준으로 정확하게 시간을 정의하려면 상당히 장기적인 관측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류는 시간 정의를 천체 움직임에서 원자 특성으로 찾게 됐다.
원자는 전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아다니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자 궤도는 에너지 상태에 따라 다르다는 게 알려져 있으며 전자 궤도가 변화하면 원자는 특정 주파수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한다. 이 빛 주파수는 원자 고유의 것으로 정확하고 안정된 값을 가진다. 주파수(Hz)는 시간(s) 역수이므로 빛의 주파수로부터 시간을 정의하는 게 가능해진 것. 이 원리를 이용한 시계가 원자시계다.
국제단위계에서는 1967년 1초를 세슘 133 원자 기저 상태에 있는 두 초미세 구조 준위 전이에 대응하는 방사 주기 91억 9,263만 1,770배로 정의했다. 또 세계 최초 원자시계는 1949년 암모니아 분자를 이용해 개발됐고 1955년에는 세슘 133을 이용한 원자시계가 영국에서 실용화됐다.
미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2019년 가동한 심우주 원자시계는 우주선에 탑재해 지구 이외 행성에서 살아갈 미래를 실현하는 걸 목표로 개발됐다. 이 심우주 원자시계는 전자기 트랩 내에서 유지된 수은 이온 전자 궤도 전이를 관측하는 구조로 온도 변화 등 환경 요인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공법이 적용됐다고 한다. 그 오차는 무려 900만 년에 1초로 GPS 위성에 탑재된 원자시계 50배 정확도를 가진다.
현재 가장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원자시계는 2024년 7월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와 NIST 공동 연구기관인 JILA가 개발한 저온 작동 스트론튬 광격자 시계다. 그 정확도는 8.1×10-19 그러니까 오차가 400억 년에 1초라는 수준이다. 이 저온 작동 스트론튬 광격자 시계는 레이저를 간섭시켜 만든 격자 안에 레이저 냉각한 스트론튬 원자를 포획하고 그 원자에 레이저 빛을 쏘아 빛의 주파수를 측정하는 구조다.
이런 원자시계보다 더 높은 정확도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게 핵시계다. 일반 원자시계는 세슘 133이나 루비듐 전자 움직임을 이용하는 데 반해 핵시계는 토륨 229 원자핵 상태 변화를 이용하는 구조다.
토륨 229 원자핵에는 낮은 에너지로 여기되는 특수한 상태가 존재한다. 이 변화에 필요한 에너지는 다른 원자와 비교해도 1만분의 1 정도다. 그래서 일반적인 자외선 레이저를 사용해 원자핵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포인트다. 핵시계는 전자가 아닌 원자핵을 이용하므로 일반 원자시계나 광격자 시계와 비교해 외부 영향을 받기 어려워 더 안정된 시간 측정이 가능해진다는 것.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토륨 229 핵전이에 필요한 레이저 주파수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전이에 필요한 에너지가 낮다는 것은 측정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토륨 229 핵전이를 관측한 3번째 사례인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의 연구보다 수백만 배나 높은 정확도로 주파수를 측정할 수 있었다는 게 큰 성과로 보고되고 있다.
더구나 이 핵시계에는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하는 역할 외에도 현대 물리학 이론을 실증할 수 있는 가능성도 기대되고 있다.
토륨 229 원자핵에서는 전자기력과 강한 힘이라는 2가지 기본 상호작용 균형이 매우 미묘한 상태에 있으며 이 두 힘은 핵 내에서 거의 완전히 상쇄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만일 기본 상호작용 강도 자체가 변화한다면 그 영향을 검출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다크매터(암흑물질)가 원자핵 상호작용에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여부를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초끈 이론에서의 물리학 기본 상수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지 여부라는 의문에 대해 핵시계를 원자시계와 병용해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저온 작동 스트론튬 광격자 시계 정확도가 10-19 수준인 데 비해 이번 토륨 229 핵전이 주파수 측정 정확도는 10-12 수준이다. 따라서 핵시계가 원자시계를 뛰어넘는 정확도를 내려면 지금보다 측정 정확도를 더 수백만~수천만 배까지 높일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이 장벽을 넘는 건 몇 년 뒤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스 플랑크 원자핵물리학 연구소 물리학자인 호세 크레스포 로페스 우르티아는 보고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정확도가 아직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연구팀이 마침내 핵시계를 작동시켰다는 것이라며 레이저 시스템에 관한 기술적 과제는 남아 있지만 수년 내에 극복하고 핵시계는 정확도와 정밀도에서 원자시계를 추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