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된 혈액 보존 기간이 짧기 때문에 헌혈 환경이 갖춰진 선진국에서도 만성적인 혈액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인공 혈액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혈액 대체품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기술 중 하나로 인간 헤모글로빈으로 만들어진 에리스로머(Erythromer)가 있다. 분말 상태로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필요에 따라 생리식염수와 섞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에리스로머는 혈액형 불일치를 일으키는 적혈구 표면 물질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어떤 혈액형에도 사용할 수 있다.
에리스로머는 아직 임상시험 전 조사 단계에 있어 임상적 성공 사례는 없지만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23년 4,600만 달러 보조금을 투자해 에리스로머를 포함한 전혈 대체물 연구를 진행한다고 발표하는 등 실용화를 향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에리스로머의 성공이 반드시 보장된 건 아니다. 에리스로머 전신인 헤모글로빈을 이용한 인공 산소 운반체(Hb-based O2 carriers: HBOC)는 이전에 실시된 임상시험에서 사망자가 발생해 연구가 난관에 부딪혔다. 또 남아프리카와 러시아에서 승인된 지금까지 가장 진보된 HBOC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남아 있어 역시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이다.
인공 혈액 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건 헤모글로빈 기능을 안전하게 재현하는 기술이다. 우선 헤모글로빈 자체가 다루기 어려운 분자로 그대로 혈액에 사용하면 혈관과 체조직에 유해하다. 또 헤모글로빈이 운반하는 산소도 인체에 유해한 산화제로 작용하기 때문에 만일 잘못된 타이밍이나 장소에서 산소가 방출되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산소 뿐 아니라 일산화질소도 문제가 돤다. 적혈구는 활동 중인 근육에 산소를 운반함과 동시에 일산화질소도 방출하며 이게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를 증가시킨다. 그리고 운동이 끝나면 적혈구는 산소를 대량 방출하는 걸 멈추지만 이때 일산화질소가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흡수되기 때문에 이것이 혈관을 수축시킨다.
이런 적혈구 작용을 적절히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보호되지 않은 헤모글로빈이 사용된 HBOC에서는 일산화질소가 과도하게 흡수되어 혈관이 수축하고 이게 심장마비나 뇌졸중 원인이 될 우려가 있었다.
반면 메릴랜드 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에리스로머 헤모글로빈은 막으로 싸여 있어 일산화질소 흡수가 완만하다. 에리스로머는 동물 실험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쥐 혈액 70%를 에리스로머로 대체하는 시험에서 효과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 또 토끼 혈액 절반을 제거한 실험에서도 에리스로머를 주입하면 실제 혈액과 마찬가지로 토끼가 소생하는 게 확인됐다.
연구팀은 DARPA 보조금이 종료되는 2028년경을 목표로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에리스로머 초기 안전성 시험을 실시하려 한다. 연구팀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양의 O형 Rh 음성 혈액은 없다며 보존 가능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혈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