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스톤(Rosetta Stone)은 1799년 이집트 지중해 연안 도시 로제타에서 발견된 것으로 19세기 초부터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일반 공개됐다.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 프랑스 군인 피에르-프랑수아 부샤르 대위가 이집트 로제타 그러니까 라시드라는 도시에서 발견한 석비가 바로 로제타스톤이다. 로제타스톤에는 3가지 다른 언어로 텍스트가 기록되어 있었다. 가장 위쪽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신성문자, 2번째는 이집트 상형문자 필기체인 민용문자, 가장 아래쪽 부분은 고대 그리스어다.
이 석비를 회수한 영국군은 본국으로 가져가 1802년 대영박물관에 전시했고 곧 인기 있는 전시품이 됐다. 대영박물관으로 가져온 이후 영국 물리학자 토마스 영, 스웨덴 외교관 요한 다비드 옌, 프랑스 고대 이집트 연구가 장-프랑수아 샹폴리옹 등이 로제타스톤에 새겨진 문자 해독에 착수했다.
중요한 점은 가장 아래쪽 고대 그리스어 부분에 프톨레마이오스, 알렉산드로스, 아르시노에 등 왕가 인명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따라서 신성문자와 민용문자 부분에도 동일한 이름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어떤 문자로 어떤 이름을 표현하는지 밝혀지면 언어 이해에 대한 큰 실마리가 된다.
민용문자 부분에는 괄호 모양으로 구분된 문장이 몇 개 있었다. 또 신성문자에서는 원으로 둘러싸인 문장이 몇 개 있었다. 따라서 요한 다비드 옌은 이런 문장이 왕 이름일 것으로 가정하고 고대 그리스어로 읽은 이름과 대조해봤다. 그 결과 MUCH(많은), TEMPLES(사원) 등 민용문자 텍스트 내 간단한 단어를 더 해독할 수 있었다. 이는 민용문자가 알파벳과 마찬가지로 각 문자가 소리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토마스 영은 민용문자를 음운문자가 아닌 단어나 구 전체를 암호화한 표의문자라고 생각했다. 결국 옌의 생각이 맞았고 영은 민용문자와 신성문자가 음운문자가 아닌 표의문자라는 오해를 했지만 신성문자 텍스트 연구를 통해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을 해독했다.
샹폴리옹은 다른 문자와 언어 지식을 활용해 원 안에 있는 신성문자 대부분이 음운문자라는 걸 알아챘다. 이를 통해 라메세스, 투트모세스 등 왕 이름을 해독했다.
1822년 샹폴리옹이 신성문자 해독 결과를 발표해 고대 이집트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그는 신성문자 대부분이 나타내는 소리를 해독했을 뿐 아니라 일부 상형문자가 직업, 식물, 추상 개념 등을 분류하는 의미범주 환기어였다는 것도 발견했다.
로제타스톤 내용에 대한 첫 영어 번역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동아리가 출판한 로제타스톤 비문 번역 위원회 보고서에 실려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로제타스톤 비문에는 기원전 196년이라는 연대가 명시되어 있다. 그해 13세가 된 프톨레마이오스 5세 즉위 1주년을 기념해 제사장이 베푼 은혜 등을 기록했다. 또 사원 유지, 장례 등 의식을 치르기 위한 법령도 실려 있다.
당시 이집트는 정복자가 가져온 고대 그리스어와 전통적인 이집트어 2종이 사용되는 다문화 사회였다. 따라서 법령은 3개 언어로 새겨진 석비로 곳곳에 건립됐다. 이후 사원 개축 등으로 석비가 유실되어 나일강을 따라 지중해 연안 로제타까지 흘러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피라미드 지하실은 사제가 되기 위한 비밀 의식과 연구 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로제타스톤으로 신성문자가 해독되면서 피라미드가 사후 세계를 위한 신성한 무덤이라는 게 밝혀졌다. 고대 이집트 문화에 대한 이런 오해가 신성문자 해독으로 해소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