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 2만 년 전 무렵 그려진 동굴 벽화에는 동물 가까이에 선이나 도트, Y처럼 보이는 도형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런 도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이 도형은 동물 번식 주기를 나타내는 일종의 달력이 아니냐고 발견해 영국 다람대학,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연구팀이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지구가 아직 빙하기였던 시대 유럽에 살았던 인류는 순록과 물고기, 소의 조상인 오록스 등 동물을 동굴 벽화로 그렸다. 2만 년 전 유럽에서 그려진 동굴 벽화 수백 개에는 동물 옆에 |, ‧, Y 등 도형이 자주 그려져 고고학자는 이 도형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베넷 베이컨은 과거 연구 논문과 대영도서관에 소장된 동굴 벽화 이미지를 조사해 반복되는 패턴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베이컨은 동물 옆에 그려져 있는 Y 마크가 출산을 나타내며 그 밖의 선이나 도트가 태음력에 근거한 달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가설을 세웠다. 그는 다람대학 고고학자에게 연락해 연구를 더 진행했다.
사냥 채집 민족이었던 당시 인류에게 동물 출산 시기는 사냥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정보이며 Y는 선 1개가 2개로 나뉘어 출산을 의미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논문에 기록되어 있다. 또 800점 이상 동굴 벽화와 기타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선과 도트 수는 모두 13개 이하이며 이는 29.5일에 1월이 되는 태음력 월수와 일치한다.
연구팀이 동물별 번식기와 선과 도트 수 관계를 봄을 기점으로 한 태음력에 기초해 분석한 결과 선과 도트 수가 동물 번식기와 강하게 상관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더구나 일련의 선이나 도트 중 Y마크가 있는 달은 동물별 출산에 대응하고 있는 것도 시사됐다고 한다.
이번에 해독된 도형은 음성이나 언어가 아닌 수치적 정보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나 메소포타미아 쐐기형 문자 같은 문자 체계와 동렬로 생각할 수 없지만 연구팀은 일련의 도형이 문자 체계 특징을 강하게 상기시키는 일종의 원문자(Proto-writing)라고 생각하고 있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 빙하기 사냥 채집민이 처음으로 체계적인 달력이나 달력 중 주요 생태학적 이벤트 정보를 기록하는 마크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한다. 고대 조상 세계를 더 깊이 탐구해 나가면 이들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우리에게 가까운 존재임을 알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신중하게 보는 연구자도 있다. 한 전문가는 후기 구석기 시대인이 문자를 쓰거나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있었다는 일에는 동의하지만 논문에서 제창한 가설에는 충분한 뒷받침이 없고 가능한 다른 해석도 접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비도형적 징후를 자세하게 연구하는 건 환영받지만 이번 연구에선 아직 증명되지 않은 전제가 많다는 말로 Y 사인이 출산을 의미한다는 전제에 의심을 던지고 있다.
한때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에 보이는 패턴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한 적이 있는 전문가는 선과 도트가 어떤 수를 의미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동물 벽화에 잘 보이는 패턴은 선이나 도트, Y를 포함해 32개 패턴이 있다고 지적한다. 만일 이번 연구 결과가 옳다고 해도 여전히 구석기 시대 도형에는 아직 모르는 점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