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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 오해가 불러온 참화

현재 전 세계 주요 국가는 대부분 미터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유일하게 완강하게 야드 파운드법을 고수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얼마 전 미국에선 폭스뉴스에서 미터법과 야드 파운드법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폭스뉴스 해설자틴 터커 칼슨은 지구상 대부분 국가가 미터법이라는 독재에 함락 당했다고 투덜거렸다. 이를 거절한 유일한 국가가 미국이라며 당당하게 피트와 파운드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

이런 극단적인 주장은 빼더라도 실제로 미터법과 야드 파운드법 문제로 터무니없는 사태가 발생한 적도 있다. 단위의 차이가 낳은 역사적 비극이랄까.

먼저 지난 1999년 9월 23일 화성 탐사선 마스클라이미트 오비터가 화성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연스럽게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조사를 한 결과 소프트웨어가 미터가 아닌 인치로 되어 있어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나사 측 엔지니어는 후에 더 좋고 빨리 그리고 저렴하게 만들자는 모토를 내걸고 경비를 너무 깎은 게 원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2001년 무어파크대학 동물 연구소가 LA동물원 내 갈라파고스 거북이를 맡게 됐는데 당시 이 거북이의 나이는 75세, 이름은 클라렌스였다. 대학 측은 거대한 거북이의 둥지가 없었던 탓에 새로 만들어야 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동물원 측은 거북이의 체중을 몰랐다는 것. 대학 측이 문의를 했고 동물원의 답변은 250이었다.

무어파크대학은 클라렌스를 위해 체중 250파운드를 가정한 우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몸무게는 250kg이었다. 파운드로 환산하면 551파운드다. 당연히 클라렌스를 새로운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버렸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클라렌스는 멀리 가지 않았고 늙은 거북이답게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곳에서 무사히 잡혔다. 이후에는 시멘트로 단단하게 다진 튼튼한 우리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클라렌스는 지금도 건강하며 올해 96세가 된다.

한편 캐나다에서 미터법을 완전 이행한 건 1970년대 말이다. 1971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을 했는데 미국의 이웃인 캐나다 역시 처음부터 모두 잘해낸 건 아니다. 처음에는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1983년 7월 29일 캐나다항공 143편은 연료 부족 문제를 겪는다. 몇 년간 파운드로 연료를 달던 캐나다항공 측량 단위를 킬로그램으로 바꾸고 얼마 안 된 시기에 문제가 생긴 것. 캐나다에서 처음 미터법을 도입한 보잉 767이었지만 이 중 1대가 연료 부족 상태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연료 부족으로 결국 중간에 비상 착륙을 하게 됐는데 비행기 플랩도 엔진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아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착륙하게 됐다. 사고 후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으로 항공업계에서 2가지 모순된 감정이 태어났다고 밝혔다. 하나는 보잉 767이 미터법으로 전환한 것으로 단순 실수가 쉽게 대규모 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다. 다른 하나는 첫 번쨰 실수에 주의하지 않았던 점은 둘째치고 연료 부족으로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항공기가 지상에 다시 착륙한 것에 대한 파일럿에 대한 칭찬이다. 실제로 승객 69명 중 중상자는 없었다.

또 2003년 12월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 스페이스마운틴이 탈선 사고를 일으켰다. 차량 차축이 손상된 게 원인이었지만 다음해 밝힌 공식 발표에 따르면 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 혼란에 의한 제조 실수 탓이었다고 한다. 손상된 차축은 2002년 10월 납품된 30개 중 1개였다. 30개 차축 모든 설계는 사양보다 가늘고 축과 베어링 틈새가 지정폭보다 넓었던 게 사고 원인이었던 것.

1995년 9월 스페이스마운틴 차량에 이용하는 베어링 설계 사양을 인치에서 미터로 바꾸고 이에 따라 차축 직경도 44.14mm에서 45mm로 바뀌었다. 하지만 설계 도면을 수정하고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탓에 단위 변경 후 2가지 도면이 존재했다. 결국 2002년 10월 납품한 차축은 직경 44.14mm짜리 오래된 도면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스페이스마운틴 사고에서 부상자는 없었다.

마지막은 항공 분야다. 민간 항공업계에선 지금도 미터보다 피트를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 선택이 치명적이 결과를 낳기도 한다. 1999년 4월 15일 대한항공 화물기 6316편은 중국 상하이에서 인천을 향해 이륙했다. 이후 상하이 관제탑으로부터 상공 1,500m 그러니까 4,900피트로 상승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기체가 4,500피트에 도달했을 때 조종사가 부조종사에게 1,500피트라고 했냐고 되물었고 부조종사가 잘못해 그렇다고 답했다. 3,000피트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착각한 조종사는 하강을 시작했지만 비행기가 급강하,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그대로 공항에서 10km 떨어진 지점에 추락했다. 주민 등 3명과 승무원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 당하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1,500m까지 상승하라는 관제탑 지시가 있었지만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그만 이를 1,500피트로 착각한 것이다. 이런 사고를 방지할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이 미터법을 채택하는 것이지만 이는 좀처럼 실현되지 쉽지 않다. 미터법은 프랑스가 18세기 만든 것인데 이를 기억하는 미국이 그렇게 쉽게 프랑스가 만든 걸 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다른 국가의 측량 단위나 미터법을 받아들이는 걸 국가 주권 침해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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