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키트 피크 국립 천문대(Kitt Peak National Observatory) 암흑 에너지 분광기(DESI) 관측에 따르면 우주를 팽창시키는 암흑 에너지가 변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우주 가속 팽창이 수축으로 전환되어 결국에는 빅뱅 같은 특이점으로 수렴하는 우주의 마지막 빅크런치(Big Crunch), 대함몰을 시사하는 이 성과는 우주 가속 팽창 발견 자체만큼이나 혁명적인 발견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전 세계 70개 이상 연구기관에서 900명 이상 연구자가 모여 결성된 암흑 에너지 분광기(DESI) 관측팀은 지난 4월 DESI 초기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성과를 발표했다. 그 중에는 빅뱅 직후에 나타난 밀도가 요동 치는 잔재인 바리온 음향 진동을 계측해 만든 우주 3D 지도도 있다.
지금까지 가장 큰 우주 지도를 만든 것만으로도 큰 업적이지만 지난 110억 년 동안 암흑 에너지가 우주 구조에 미친 영향을 포착한 이 관측 데이터 분석 결과 암흑 에너지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주류 우주관과 전혀 다른 우주 행방을 암시하는 이 발견에 대해 전문가는 이 결과 발표는 우주론에 있어 멋진 날이라며 중요한 점은 암흑 에너지가 진화하며 불변이 아니라는 것으로 만일 향후 데이터에서 뒷받침된다면 진화하는 암흑 에너지 발견은 우주 가속 팽창 발견만큼이나 혁명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우주론에서 가장 유력한 모델인 Λ-CDM모델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와 에너지 70%를 차지하는 암흑 에너지가 Λ(람다), 그러니까 우주 상수로 표현된다. 이 우주 상수가 처음 등장한 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이 이론으로 중력의 성질을 밝혀낸 지 2년 뒤인 1917년 아인슈타인과 네덜란드 천문학자 빌럼 더시터르는 이 이론으로 우주를 기술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 이론에 기초하면 우주가 펴지거나 줄어들어버린다는 점이었다. 지금이야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우주는 신이 만든 것이므로 과거에서 미래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식인 사이에서 상식이었고 20세기 최고 두뇌 중 1명으로 꼽히는 아인슈타인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아인슈타인은 방정식에 일종의 어쩔 수 없는 계수를 덧붙였다. 이게 바로 우주 상수 Λ다.
중력을 상쇄하고 우주를 밀어내는 힘인 반발력을 만들어내는 우주 상수 Λ에 의해 우주는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며 정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1929년 에드윈 허블이 먼 은하를 관측해 적색 편이를 보인다는 것, 그러니까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이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방정식에서 우주 상수를 제거하게 된 아인슈타인이 우주 상수 도입을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후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1998년 초신성 관측을 통해 우주 팽창 속도를 측정하려 했던 두 천문학팀이 우주 팽창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며 심지어 가속되고 있음을 발견하자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미스터리 반발력인 암흑 에너지로 다시 한번 Λ가 주목받게 됐다.
우주 상수를 포함한 Λ-CDM 모델은 지금까지 보고된 많은 관측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이대로 팽창을 지속해 별이 연료를 다하는 빅 프리즈(Big Freeze) 또는 시공간 자체가 찢어지는 빅 립(Big Rip)으로 종말을 맞이할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번 DESI 관측에서 암흑 에너지가 일정하지 않고 변화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시사됐다. 이에 대해 한 연구자는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결국에는 우주의 가속 팽창이 끝나고 반전되어 중력 영향으로 수축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이 우주는 빅크런치 시나리오로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발표된 건 DESI가 관측을 시작한 지 1년 동안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앞으로 축적된 데이터 추가 분석이 진행되면서 우주의 과거와 미래 모습이 더 정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