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각국에서 유급 휴가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선진국에선 유일하게 미국만 유급 휴가라는 제도를 법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 미국은 인도, 파키스탄, 파푸아뉴기니 등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 유급 휴가를 보장하는 국책이 없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유급 휴가처럼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수당은 모두 고용주 재량에 맡겨져 있으며 제공되어도 평균 일수는 14일이라고 한다. 이 일수는 선진국 중에선 전 세계적으로 봐도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어쨌든 미국인 노동자 20% 가까이는 유급 휴가가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노동자에게 유급 휴가를 주기 위한 운동이 이뤄지는 것도 남아 있지만 그만큼 유급 휴가를 주는 것에 반대하는 의사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1910년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은 휴가는 더 이상 부유층 만의 전유물이어선 안 된다고 제안하며 활력 있게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모든 이들이 매년 3개월은 일에서 떠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다른 국가에서 유급 휴가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였음에도 그의 휴가 제안은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 비즈니스 리더는 정부 간섭에 반대하고 놀랍게도 노동자 측에 선 미국노동총연맹조차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고 한다.
당시 노동 지도자는 농경 민족 같은 독립 자급 전통에 물들었고 노동조합은 질병, 실업, 고령화 등 경제적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충분한 고임금 확보에 중점을 두고 유급 휴가나 퇴직 연금 제도, 건강 보험 등은 미국 자립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30년대 일어난 세계 공황이 이를 바꿔 버린다. 불황으로 인한 고용 불안으로 먼저 많은 유럽 국가가 노동조합에 밀려 연례 유급 휴가를 보장하는 국가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고 이 영향은 미국 노조 태도를 바꾸게 한다. 이 때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정권 하에서 노동장관을 맡았던 프란시스 파킨스는 노동부에 유급 휴가에 대한 조사를 명령하고 전국적인 법제화를 목표로 했다.
파킨스는 유급 휴가 추진파로 유급 휴가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필수 불가결한 것이며 노동자의 건강한 생활에 중요한 요소라고 자주 밝혔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이 당시 일을 잃은 상태였고 그는 대신 근로 시간 단축과 최저 임금 저하, 아동 노동 금지에 초점을 맞춰 전국적인 유급 휴가 정책 추구가 아니라 계약 일환으로 노동자가 사용자와 유급 휴가 협상을 한다는 노동조합 의견을 지지했다. 파킨스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1945년 파킨스가 노동부를 떠날 무렵에는 미국 노동 인구 3분의 1이 조합에 가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30년간 미국에선 많은 개인 고용주가 2주간 유급 휴가를 제공했으며 많은 조합 계약에서도 유급 휴가 부여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 분위기는 크게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다. 1970년 국제노동기구는 매년 최소 3년간 유급 휴가를 요구했고 유럽 노동자는 연차 유급 휴가 장기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에선 노동조합이 힘을 잃고 임금이 침체되기 시작한다. 결국 이후 연방법으로 유급 휴가 부여가 정해지지 않게 됐다.
보도에선 미국이 개인이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생각에 크게 영향을 받아 건국됐기 때문에 기업의 자유로운 결사를 방해하는 고용주에게 의무를 부과하는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한 노동 경제학자는 미국에선 항상 레저나 휴가에 대한 불쾌감이 있어 일에 대한 동기를 과시하는 문화적 바이어스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인 노동자는 더 많은 유급 휴가를 얻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게 더 우선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급 휴가에 대한 생각은 일부 주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메인주 등 여러 주에서 유급 휴가를 노동자에게 보증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있으며 메릴랜드주에서도 유급 휴가 부여를 의무화하는 법률이 통과되어 2025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