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이나 푸딩 등에 빠뜨릴 수 없는 바닐라 에센스와 바닐라 원료인 식물인 바닐라는 같은 무게 은보다 비싼 사프란에 이어 전 세계에서 2번째로 비싼 향신료로 알려져 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천연 바닐라 대부분은 원산지인 중앙아메리카가 아니라 아프리카 동부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에서 생산되고 있다. 왜 마다가스카르가 세계 최대 바닐라 생산지가 된 것일까.
바닐라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동남아, 서아프리카 등 저위도 지역 고온 다습 지역에서 서식하는 바닐라 속 덩굴 식물이다. 상록 식물 바닐라에서 채취한 열매는 가늘고 이 과일을 발효, 건조시킨 게 향료로 사용된다. 또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들어 있는 검은 입자는 이 열매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검은 씨앗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바닐라 속은 전 세계에 수백 가지가 존재하지만 야생에서 바닐라 특유 향기를 가진 종은 중앙아메리카에서 자생하는 것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중앙아메리카 원산 바닐라는 재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재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수분 매커니즘이 해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닐라 꽃은 단 몇 시간 밖에 피지 않고 일설에는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벌과 벌새가 수분에 관여하는 게 아닐까 여겨지고 있지만 자세한 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바닐라 수요는 높지만 인류는 멕시코 남동부에 자생하는 바닐라에서 열매를 채취할 수밖에 없다.
또 채취한 열매를 그대로 사용해도 바닐라 특유의 달콤한 향기는 얻을 수 없다. 바닐라 향기 주성분인 바닐린 바닐라 열매를 데쳐 구이와 지방에서 검게 될 때까지 건조시켜 합성하기 때문에 바닐라 가공은 까다롭고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바닐라 수요에 공급이 제한되어 버려 가격도 비싸다.
바닐라는 원래 아즈텍족 등 멕시코 주변 원주민이 종교의식과 초콜릿으로 만든 음료 향기에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6세기 스페인이 중앙아메리카를 정복했을 때 초콜릿이나 고추, 토마토 등과 함께 유럽에 반입됐다. 그리고 식민지에서 만들어진 설탕과 곁들여 바닐라 아이스크림 등 바닐라를 이용한 상류층을 위한 과자가 발명되어 바닐라 수요가 크게 높아졌다.
바닐라는 재배가 어려운 식물이다. 따라서 유럽에 유통되는 바닐라는 중앙아메리카를 지배하는 스페인이 완전히 독점하고 있었다. 19세기경부터 스페인 이외에 다른 유럽 국가는 이런 이유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바닐라 재배를 시도했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령이던 마다가스카르는 바닐라 재배에 적합한 기후였다. 바닐라 생육에는 고온다습한 환경이 필요하지만 꽃이 열려 수분까지 건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고온다습이면서 1년에 2회 정도 몇 개월 단위 건기가 찾는 마다가스카르 기후는 바닐라 재배에 딱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처음에는 바닐라 열매는 좀처럼 얻을 수 없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한 바닐라 인공 재배에 성공한 건 1841년. 마다가스카르 앞바다에 있는 프랑스령 부르봉섬이었다. 노예였던 12세 소년 에드몽 알비우스(Edmond Albius)이 식물에 조예가 깊어 식물학자 조수로 채용되어 식물학 원예 기술을 배웠다.
당시 바닐라 재배를 시도하기 위해 바닐라 주식을 부르봉섬에 반입했다. 바닐라 꽃은 자웅동체로 꽃 하나에 수술과 암술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자가 수분이 이론상 가능하지만 바닐라 수술과 암술 사이에는 얇은 막이 처져 있으며 자가 수분을 할 수 없다. 알비우스는 이 막을 핀으로 들어올려 인공적으로 수분을 시켰고 그 결과 예상대로 20년 길러 한 번도 과실을 맺지 못한 바닐라가 훌륭하게 결실을 맺ᄋᅠᆻ다. 이 때 인류 역사상 처음 바닐라 인공수분법이 확립된 것이다.
알비우스가 발견한 인공수분법에 의해 부르봉섬과 같은 프랑스령이던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재배하면서 바닐라 대규모 생산이 이뤄지게 됐다. 브루봉섬은 부르봉 바닐라라는 막대한 부를 창출했지만 노예였던 알비우스는 소송에 휘말려 보상을 얻지 못하고 노예가 불법이 된 1848년 노예에서 해방됐지만 1880년 빈궁 속에서 사망한다.
부르봉 바닐라가 원산지인 멕시코 바닐라보다 품질이 높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멕시코는 1910년 발발한 멕시코 혁명에서 수십년 동안 내전 상태가 되고 1914년경 멕시코 국내 바닐라 농장은 모두 폐쇄된다. 또 1932년에는 멕시코 바닐라 생산 중심지이던 파판트라(Papantla) 시에서 가까운 곳에 대규모 유전이 발굴되면서 석유 산업에 중점을 두게 된다. 멕시코 국내 산림이 대규모로 벌채되어 고온 다습한 기후가 변화하고 바닐라 성장이 어렵게 된 점도 있다. 이렇게 멕시코 바닐라 농업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마다가스카르는 세계 최대 바닐라 생산지가 됐다.
또 바닐라 향기를 만드는 바닐린 합성은 19세기부터 연구가 진행됐으며 지금은 공업적으로도 합성할 수 있다. 시장에 나와 있는 바닐라 향료 중 99%는 합성 바닐린에 의한 것으로 가격도 천연 바닐라 20분의 1 이하라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