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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史

유럽연합에 있어서 러시아는 인접한 가장 큰 국가이며 소련 시절부터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미묘한 존재다. 하지만 천연가스라는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는 공급량 중 40%를 차지하는 소중한 존재이며 50년 이상에 걸쳐 안정적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후 유럽 부흥에 매달리면서 가스 수요는 크게 늘어난다. 당시 유럽에선 가스 파이프라인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에서 작은 수준으로 실용화된 수준이었고 원거리 가스 공급에는 아직까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가스전 개발이 진행되고 어딘가 팔고 싶다는 소련의 생각과 가스를 사려는 유럽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고 기술도 발전하면서 1960년대 시베리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이 세워졌다. 이후 1968년 오스트리아에 처음으로 가스가 전달됐다. 파이프라인 건설이 시작된 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공산당 개혁 운동을 소련이 바르샤바조약기구 군대를 이끌고 진압한 프라하의 봄 직후이기도 했다.

1970∼1980년대에 걸쳐 가스는 석탄이나 석유보다 저렴하고 환경 친화적인 것으로 소비가 더 증가했다. 노르웨이나 영국도 북해 가스전 등을 통해 유럽에 가스를 공급했지만 소련은 광활한 가스전의 풍부한 매장량을 배경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가스를 공급했기 때문에 당시 소비량 절반을 지원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소련산 가스 의존도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두드러졌다.

1981년 폴란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노동조합 연대에는 정부가 불법화하고 계엄령을 내린다. 소련은 폴란드 정부의 움직임을 지지했고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파이프라인 기술 수출에 제재를 부과한다. 이는 미국이 소련과의 사이에서 대부분 에너지 무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정치적 혼란 와중에도 소련은 가스 수송에 필수적인 압축기와 파이프 기술 개발을 계속했고 소련에서 개발할 수 없던 기술은 유럽에서 수입했다.

유럽과 소련을 잇는 가스 파이프라인은 1991년 소련 붕괴를 거쳐 가스 산업자원부가 국유기업 가스프롬으로 모습을 바꿨지만 지금도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프라인라인은 주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거친 것과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 1으로 불리는 발트해를 통해 독일에 이르는 것이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이에 가스 분쟁을 겪고 있고 폴란드와의 관계도 별로여서 우크라이나나 폴란드를 경유하지 않는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2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는 가스 러시아 의존도를 벗어나려는 EU 정책에 반하는 것이다. 러시아 가스는 EU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이후 수십 년간 가스 황금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