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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 지하철표 현금 구입의 의미

최근 홍콩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용의자 신병을 중국으로 인도하는 조례를 통과시키려는 홍콩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이 거리에 나와 항의에 나선 결과다. 그런데 이 시위에서 이상한 일이 하나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가 지하철에 승차할 때 IC카드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IC카드를 개찰기에 대는 대신 일부러 발매기에서 모두 현금으로 표를 구입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홍콩에 가본 적이 있다면 옥토퍼스 카드라고 불리는 IC카드가 얼마나 대중적인지 알 것이다. 이 카드를 이용하면 페리를 타거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이런 옥토퍼스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 표를 구입하면 불편하고 가격까지 높아진다. 그럼에도 시위 참가자는 IC카드를 사용하기 불안했던 것이다. 시위에 참가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역 발매기에 줄지어 선 사람들은 시위 참여 기록이 남을 게 두려워 모두 IC카드 사용을 망설였다. 사실 이 같은 문제는 홍콩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이제 전 세계 경찰과 정보기관은 비밀리에 공공 공간에서 통신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시위가 발생할 때뿐 아니라 항상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고 있는 것이다. 감시 대상은 확대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감시 수단도 늘어난다.

기술을 이용하면 원격으로 눈에 띄지 않게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있다. 휴대 전화 기지국을 가장하면 현장에 있던 사람의 이메일 내용이나 통화 내용, 인터넷 통신 기록을 차단할 수 있고 얼굴 인식 시스템을 탑재한 수많은 감시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신분증을 꺼내놓고 다니는 셈이다. 공용 와이파이 역시 추적에 이용할 수 있다. 기술이 주는 편의의 나쁜 대가라고 할까.

 

지하철 승차 기록을 IC카드로 추적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옥토퍼스 카드 대부분은 무기명이지만 사용자 신용카드에 연결되어 있는 탓에 과거에는 경찰이 신용카드 정보를 통해 용의자를 추려낸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발매기 앞에 늘어선 장사진은 데이터가 움직이는 현재의 세계가 일상적으로 기술을 접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지만 반대로 기술에 제공한 데이터 탓에 신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걸 말해준다.

사람들 대부분은 거리에 있는 감시 카메라에 잡힌 자신의 영상 데이터가 얼굴 인식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더라도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만일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개인의 움직임이 놀라울 만큼 정밀하게 기록되어도 평소에 삶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적어도 평소에는 그렇다.

기술이 편리하면 개인 정보 유출은 상대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는 보잊 않고 피해 대부분은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에 있다. 또 사회적 약자가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벌인 순간부터 대중교통카드마저 감시와 제압을 위해 쓰이는 데이터의 보고가 될 수도 있듯이. 기술이 만드는 미래는 이미 조금씩 그리고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혜택 분배가 반드시 공정하지는 않다.

이렇듯 미래에는 개인 정보가 위험해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앞으로 개인 정보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명분 하에 전 세계 정부기관이 새로운 통신 감시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이런 기술을 통제할 법적 틀이 없다면 반대로 민주주의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기술을 통제할 명확한 틀 없이 그리고 개인 정보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등 개개인의 노력 없이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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