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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현금 사회가 불러올 고립

영국 무현금 사회 실태를 조사한 액세스투캐시리뷰(Access to Cash Review) 보고서가 나왔다. 영국은 현금을 이용하지 않는 소매점이 늘어나는 등 캐시리스화를 향하고 있지만 이번 조사는 되려 무현금 사회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수백만 명이 고립될 것이라는 경종을 울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보고서는 규제기관과 관계자 등 120개 이상 조직과 개인을 인터뷰하는 한편 온라인상에서 2,000명 이상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후원은 영국 최대 현금네트워크인 링크(Link)지만 조사 자체는 독립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영국 인구 중 17%에 해당하는 800만 명 이상 성인이 무현금 사회에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빈곤 등으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만들 수 없는 경우 뿐 아니라 디지털 서비스 이용으로 인한 건강 문제 발생 2%, 타인에게 물건 구입을 맡기는 경우 4%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 IT 시스템 종료를 대비해 현금을 가진 경우 18%도 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결과는 현금이 어떤 이들에게는 필수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무현금 사회를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니는 고립화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선 영국은 이대로 가면 2026년에는 현금 사용이 끝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또 보고서는 캐시리스화를 추진해 범죄를 줄이자는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현금은 익명성이 높기 때문에 범죄자에 사용하기 쉽다는 견해다. 다만 범죄자는 현금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도 범죄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합법적인 경우에도 현금의 개인정보보호와 익명성을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선과 악, 배우자와 부모, 자녀에게 거래 기록을 숨기고 싶은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만일 현금이 익명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면 사람들은 암호화폐나 비밀 계좌 등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조사는 현금을 사회에서 뺄 수 없는 인프라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5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현금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ATM 액세스 뿐 아니라 소비자 거주 지역이나 직장 어디서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게 보장하라고 제안한다. 장기적으론 법제화할 필요가 있지만 처음에는 자원 봉사 수준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둘째 현금 수용을 위한 인센티브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사업자가 현금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것. 지금은 현금 보관 장소나 보안 확보에 높은 비용이 들지만 이런 비용을 절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 현금이 필요한 소비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셋째는 현금 인프라 재정비다. 현재 현금 인프라를 상업 모델에서 공익 모델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인프라는 현금 유통량이 많을 당시 만들어진 것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비용을 들여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넷째는 디지털 내포물이다. 정부가 디지털 결제로 국민 중 80%가 아닌 100%를 포용할 것으로 제안하고 모든 이들에게 디지털 결제가 선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현금에 대한 정책 투명화다.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 현금에 대한 정책 방향성을 나타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시장에 맡길 뿐 아니라 금융 관련 규제기관과 협력해 행동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캐시리스화에 제동을 거는 움직임은 영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 당국이 현금 지불을 금지하는 소매점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캐시리스화에 소극적인 이유는 현금을 사용해 프라이버시가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이 배경에 있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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