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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 상용화 시대의 개막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지니 로메티(Virginia Marie Rometty) IBM CEO가 CES 2019 기조연설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IBM은 몇 가지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지만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새로운 컴퓨터였다. 바로 IBM 큐시스템 원(IBM Q System One)이다.

이 제품은 실제 성능을 떠나 의미 하나만큼은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를 시도하는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이기 때문이다.

IBM 큐시스템 원은 한 면이 2.7m인 입방체 안에 양자컴퓨터 본체를 장착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두께 13mm짜리 유리로 둘러싼 박스는 기밀성이 높고 프레임은 알루미늄과 스틸 재질로 만들었다. 내부에는 저장이나 제어 전자 장치를 분리해 유지 보수를 염두에 뒀다. 알루미늄과 스틸 프레임으로 본체를 둘러싼 건 위상 잡음이나 양자 일관성 등을 위해 잠재적 진동 간섭을 피하기 위한 고려가 반영된 결과다.

이 제품은 범용 양자 컴퓨터를 표방한다. 크기가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험실에 있던 기존 대형 양자컴퓨터와 견주면 콤팩트한 편이고 단독 작동하는 형태여서 기업이 구입해 쓸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문턱 자체를 낮춰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이렇다. 이제껏 양자컴퓨터를 안정적으로 이용하려면 거대한 냉각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연구실 같은 대규모 시설에서나 쓸 수 있었던 것. 2.7m 사방 입방체에 양자컴퓨터를 집어넣었다는 건 “너무 크다”가 아니라 “이렇게 작아졌다”는 쪽이 맞는 표현일 듯싶다.

IBM 큐시스템 원은 재현성이 있고 예측 가능한 고품질 양자비트를 얻기 위해 자동 보정되도록 설계한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저온 고립 양자 환경 제공을 위한 극저온 공학, 양자비트 다수를 엄격하게 제어하는 정밀 전자기기, 클라우드에 안전하게 접근하고 양자 알고리즘의 하이브리드 실행 환경을 제공하는 기존 컴퓨팅 시스템 등 5가지 사용자 정의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다.

물론 이 컴퓨터의 능력은 20큐비트(Qubit)여서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기존 컴퓨터에서도 현실적으로 연산할 수 있는 범위 내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양자컴퓨터 상용화에 대한 첫 시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단순 연산 성능 하나 이상의 가치는 충분할 수 있다.

왜 양자컴퓨터에 주목할까=그렇다면 왜 양자컴퓨터를 주목할까.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된다면 기존 컴퓨터에선 0 또는 1에서만 존재하던 비트가 동시에 2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양자 중첩, 2가지 양자비트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되는 현상인 양자 얽힘 등을 통해 대규모 연산을 한 번에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다시 얘기를 풀자면 양자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이유는 현재 컴퓨터의 한계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컴퓨터의 구성 요소는 기억장치와 연산장치, 제어장치 등 단순하다. 컴퓨터에는 칩과 모듈, 논리 게이트, 트랜지스터가 있다, 트랜지스터라는 건 간단하게 말하면 스위치다. 정보를 흘리거나 혹은 멈춘다.

여기에 흐르는 정보 데이터의 최소 단위는 비트로 표시한다. 앞서 밝혔듯 비트는 0 또는 1이라는 값을 갖는다. 비트는 0이나 1 한쪽으로만 표현할 수 없지만 여러 개가 있으면 더 복잡한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

논리 게이트는 간단한 연산을 처리한다. AND 게이트라면 모두 1이라면 1을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0을 보낸다는 정말 단순한 형태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결합을 하면 덧셈이 가능해지고 곱셈도 할 수 있는 등 모든 계산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필요한 건 간단한 계산을 위한 묶음만 있으면 된다. 간단하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물리학이나 복잡한 3D 게임 플레이까지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물질이 작아지면 양자의 성격이 나타난다. 앞서 밝혔듯 트랜지스터는 전기 스위치이며 전류는 전자의 움직임이다. 스위치는 이런 흐름을 차단한다. 지금 사용 중인 트랜지스터 크기가 14nm 제조공정을 보통 이용한다. 이는 HIV 바이러스와 견줘도 8분의 1 크기에 불과하고 적혈구의 500분의 1 수준이다. 인텔이 10nm 양산을 발표했지만 이미 무어의 법칙을 지키기 어려운 상태가 된지 오래다.

어쨌든 이 정도 크기까지 작아지면 전자는 터널효과(tunnel effect)에 의해 벽을 빠져 나와 버린다. 일정한 확률로 장벽의 바깥쪽으로 나오게 되는 것. 기술이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하고 있는 게 바로 양자컴퓨터다. 기존 컴퓨터는 비트를 이용하지만 양자컴퓨터는 2가지 상태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입자인 양자의 특징을 이용한 양자비트를 이용한다. 0과 1 상태가 광자의 편광 상태에 가까운 것이다. 양자비트는 한 가지 상태가 아니라 한꺼번에 2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중첩이라고 한다.

일반 컴퓨터에서 보통 4비트 정보를 나타내려면 16가지 중 하나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양자비트는 16가지 모두를 한꺼번에 표시할 수 있다. 덕분에 20개 큐빗을 이용하면 무려 100만 개를 병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양자 얽힘 현상이 있다. 이는 큐빗 2개가 떨어져 있어도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되는 걸 말한다. 하나만 봐도 다른 것의 상태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비트 작업은 어렵다. 논리 게이트는 입력 하나에 출력 하나지만 양자컴퓨터의 양자 게이트는 입출력이 복잡하다. 큐빗에 넣은 입력이 양자 게이트를 통해 얽힌 걸 관찰하면 가능한 계산이 모두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얻고 싶은 결과는 이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를 찾아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한 것.

이런 문제가 있지만 양자의 특성을 잘 이용하면 빠른 계산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데이터베이스 검색. 기존 데이터베이스 검색은 모든 요소를 참조할 필요가 있었던 만큼 뭔가를 조사하려면 하나하나 데이터를 참조할 필요가 있었고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양자 알고리즘은 이보다 제곱근의 시간이면 검색할 수 있다. 다시 말해 100만 초 걸렸던 검색이라면 1,000초에 끝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정보 보안. 현재 인터넷이나 은행에선 공개키 암호화를 통해 정보를 암호화해서 보호한다. 물론 공개키 암호화는 계산하면 해독할 수 있지만 기존 컴퓨터로 이를 처리하려면 몇 년은 족히 걸린다. 하지만 여기에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순식간에 끝낼 수 있다.

시뮬레이션에 이용할 수도 있다. 시뮬레이션은 방대한 계산이 필요한 분야다. 그 밖에 양자역학 자체 연구에도 당연히 쓸 수 있다. 의학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물론. 기존 컴퓨터가 해결할 수 없던 새로운 물질이나 약품 발견, 복잡한 주식 시장 계산, AI 연구 개발 등 높은 연산 능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반기 뉴욕에 양자컴퓨팅 데이터센터 구축도=양자컴퓨터 시장을 놓고 개발 경쟁을 벌이는 게 IBM 하나는 아니다. 구글이 지난해 3월 양자 프로세서인 브리슬콘(Bristlecone)을 발표한 바 있다. 주위에서 흔히 보는 PC용 프로세서는 0이나 1 상태를 1비트에 지니고 있다. 하지만 브리슬콘은 0과 1 정보를 동시에 가진 중첩 상태인 양자 비트를 72개를 탑재하고 있다.

구글은 오래 전부터 양자 컴퓨터를 목표로 해왔다. 구글은 디웨이브(D-Wave)를 인수한 이후 이 양자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을 진행해왔고 2014년에는 디웨이브2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인텔 역시 2017년 17큐비트 처리 성능을 갖춘 초전도 칩 프로토타입 생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과학잡지 네이처는 2017년을 기점으로 양자컴퓨터가 연구에서 개발 단계로 이행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시 IBM 얘기로 돌아가면 IBM은 2017년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양자컴퓨팅을 써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인 IBM Q익스피리언스(Q Experience)를 발표했다. Q익스피리언스는 지금까지 670만 건이 넘는 실험을 수행했고 130건 이상 연구 논문에 협력을 해왔다고 한다.

IBM은 또 같은 해 IBM Q네트워크(IBM Q Network)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20큐비트 클라우드 기반 IBM Q시스템 등 양자컴퓨팅 개발 자원을 제공해 양자컴퓨팅 생태계 확대에 기여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와 JP모건체이스, 다임러AG,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또 옥스퍼드, 멜버른 대학 등 12개 기업이나 기관이 참여했다.

이 과정을 거쳐 IBM은 드디어 첫 상용화 모델인 IBM 큐시스템 원을 발표한 것이다. IBM은 제품 발표 당시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미국 뉴욕에 IBM Q퀀텀컴퓨테이션센터(IBM Q Quantum Computation Center)를 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자컴퓨팅 데이터센터를 개설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사의 상용화 양자컴퓨팅 프로그램도 확대, 연구기관이나 기업 접근성을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Q익스피리언스부터 이어온 클라우드 기반 양자컴퓨팅 생태계의 확장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IBM 큐시스템 원은 지금까지 실험실 속에 머물던 양자컴퓨터를 일반 기업도 도입할 수 있게 됐다는 혹은 가능할 수 있게 해줬다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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