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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젊은 조기퇴직 운동

인공지능이 확산되고 일하지 않아도 될 미래를 떠올리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런 상황을 말해주듯 요즘 20∼30대에 은퇴하는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로 가득한 사회 생활에서 일찌감치 작별하려는 것.

피트 에드니(Pete Adeney)가 주창한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는 노후 걱정 없이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면서 조기 퇴직하는 걸 뜻하는 운동이다. 에드니는 부부가 6만 7,000달러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낭비를 일절 줄이고 저축을 해 20만 달러짜리 집과 60만 달러를 모은 뒤 회사를 그만 뒀다. 60만 달러만 있으면 운용수익률 4%를 생활비로 돌리기만 해도 부부와 자녀 모두 3명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블로그를 통해 올려 공감대를 일으켰고 지금은 이것 자체가 연간 40만 달러 수입원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은퇴한 30세 시점 자산 기준으로도 13년간 생활비는 모두 충당한 상태다.

조기 퇴직을 할 때 필요한 저축은 보통 연간 지출액의 25배라고 한다. 피트 에드니의 경우 자동차도 없고 집도 저렴한 지역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3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2만 4,000달러면 충분했다. 물론 여기에는 60만 달러 저축이 자리잡고 있기는 하다.

조기 퇴직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럭셔리한 생활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 FIRE 운동을 하는 사람은 사치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생각이 강한 쪽이다. 평생 직장이 과거의 일이 되고 해외 아웃소싱이나 인공지능에게 내일 일을 빼앗길지 모를 시대다. 승진 경쟁이나 모기지, 과로, 끝없는 대량 소비 등 악순환을 돈의 힘으로 막으려 해왔지만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이 같은 악순환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려 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블로그나 서적을 통해 공유해 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꿈꾸는 사람이 많더라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적은 만큼 이 같은 시도가 성공하면 안정적으로 독자를 확보하고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

FIRE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체지방을 태우듯 철저하게 절약하는 절약형인 Lean FIRE, 평범한 보통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지방, 그러니까 잉여수익을 저축과 투자에 쏟아 생활하는 Fat FIRE가 그것이다. 그 뿐 아니라 바리스타 FIRE 같은 것도 있다. 건강보험 등을 목적으로 스타벅스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세미 은퇴형인 것. 미국의 경우 건강보험료가 만만치 않아 이런 변칙적인 형태가 생긴 것이다.

또 ‘firing’이라는 현재형을 쓰면 구두쇠 그러니까 경제적 독립을 목표로 하는 단계를 말한다. 그 밖에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 FIRE 인구를 아비트리지(arbitrage)ㄹ파고 부르기도 한다.

어떻게 부르든 FIRE 운동은 퇴직 연령이 엄청나게 이르다는 특징이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경우 소득 중 3% 정도 밖에 저축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쓸 수 있는 비상 금액이 400달러도 없는 층이 절반 가까이 있다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 중 3분의 2는 노후 저축 제로라고 한다. 자본주의 구조는 돈이 돈을 낳는 구조다. FIRE 운동은 인공지능 같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의 변화는 물론 구조적 문제에서 탈피하려는 밀레니얼 세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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