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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다음 격전지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가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카날리스(Canaly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스마트폰 판매 대수는 전년 동기대비 21% 떨어졌다. 지금까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견인해온 중국 시장이 정점에 오른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스마트폰 판매가 줄어드는 이유는 보급률이 높아지고 있다거나 혁신적인 기술 진보가 없는 등 다양한 원인이 지적된다.

이렇게 중국 시장이 움츠러들면서 자연스레 인도 시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시장이기 때문. 중국은 물론 이미 보급률이 높은 선진국이 포화 상태로 접어들면서 유망 시장으로 주목 받는 것이다. 인도는 13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2위 인구를 지녔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스마트폰은 시장 초기다. 스마트폰 수요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식을 줄 모르고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 7월 인도에서 출시된 스마트폰은 모두 42종. 작년 같은 기간 25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도 내 스마트폰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인도 시장에서 스마트폰 판매 TOP5 중 무려 4곳은 중국 제조사다. 삼성전자를 빼면 중국 스마트폰이 점령하고 있는 것.

물론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인도 시장 1위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인도 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4%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중국 샤오미가 29.7%를 기록하며 선두를 차지했고 비보 12.6%, 오포 7.6%, 트랜션 5% 등 중국 업계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점유율이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중국 제품은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3분의 2를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15% 이하였다. 당시 인도 시장은 삼성전자 외에 마이크로맥스 같은 인도 현지 기업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류에 변화가 생긴 건 인도 내 모바일 회선이 급격하게 바뀐 게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6년 인도 사업가 무케시 암바니(Mukesh Ambani)는 인도 내에 초고속 통신망을 마련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릴라이언스 지오(Reliance Jio)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도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용 와이파이 핫스팟은 거의 없었다. 농촌에선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다. 전체 국민 중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인구는 5명 중 1명에 불과했던 것. 무케시 암바니는 릴라이언스 지오 서비스를 통해 4G 고속 무선 통신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인도 전역에 단번에 인터넷 통신망을 구축할 계획을 세운다.

릴라이언스 지오는 2016년 이미 인도 내 80% 지역에 4G 무선 통신망을 구축했다. 무케시 암바니는 인도 전역에 걸친 디지털 혁명을 예견하고 2016년에만 1만 8,000개 도시, 20만 개에 달하는 마을에 모바일 통신망을 커버하고 다음 해까지 인구 전체 중 90%를 커버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가격 파괴라고 표현할 만한 공세로 인도 내 인터넷 서비스가 극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릴라이언스 지오가 가격 파괴라고 할 만한 4G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인도 스마트폰 제조사는 소비자가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저렴한 4G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런 틈새에 뛰어든 게 바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다. 2016년 전체 시장 점유율 46%를 차지하면서 존재감을 보였던 마이크맥스 같은 인도 제조사는 시장에서 외면받기 시작했고 더 이상 복구하기 어려울 만큼 중국 제조사 쪽으로 판세가 기울었다.

인도의 정책 변경에 재빨리 대응한 것도 중국 제조사가 점유율을 키운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2014년 인도 정부는 메이크인 인디아(Make in India) 프로그램을 발표한다. 인도 제조업의 GDP 점유율 향상을 위해 외자 투자 촉진을 목적으로 한 것. 이를 위해 인도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이 정책에 재빠르게 대응한 게 바로 샤오미다. 샤오미는 2018년 인도 전역에 스마트폰 제조 공장을 보유하고 1만 명 이상 인도 인력을 고용하는 등 인도 내에서 판매하는 스마트폰을 인도 내에서 제조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샤오미가 인도에서 고용하는 인력 중 95%는 여성이어서 고용 면에서 남녀 격차를 해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삼성전자 역시 올해 인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공장을 열었다. 삼성전자는 인도 노이다(Noida)에 스마트폰 제조 공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인접한 13만 명 대지를 더해 공장을 확장한 것.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인도에서 스마트폰 생산량을 2020년까지 2배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이다 공장의 스마트폰 생산 대수는 2017년 기준 6,800만 대에서 1억 2,000만 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인도 내 2017년 스마트폰 출하량은 1억 2,400만 대다. 전년대비 출하량은 14%나 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인도 스마트폰 사용자 수가 4억 2,500만 명으로 보이지만 앞서 밝혔듯 인도 전체 인구가 13억 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앞으로 성장이 더 기대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노이다 공장에선 100달러 이하 저가형 스마트폰은 물론 플래그십 모델까지 모든 모델을 제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도 시장에서 주류인 저가형 외에 하이엔드까지 모든 가격대 스마트폰을 제조해 앞으로 인도 국내 수요의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중국 얘기로 돌아가면 삼성전자가 이렇게 인도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샤오미 역시 인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고 있으며 인도 내에 공장 3개를 더 신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거대한 인도 시장에서 스마트폰을 직접 대량 제조하는 건 필연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스마트폰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샤오미는 세제 혜택까지 받으면서 저렴한 인도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 인도에서 고성능 저가 스마트폰 포코 F1(Poco F1)을 발표한다. 스냅드래곤 845에 램 6GB, UFS 2.1 저장장치를 이용하지만 가격은 2만 999루피(한화 32만 원대)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가격대비 성능을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가 모델을 라인업에 올리지 않은 애플은 오랫동안 인도 시장 공략에 실패했다. 애플은 이미 판매를 중지한 아이폰4를 재판매하거나 비교적 저렴한 아이폰SE를 인도 내에서 제조할 수 있게 전환하는 등 대책을 고려 중이다. 하지만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성장하지 않는 인도 시장에서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한다. 더구나 원플러스 같은 고성능 저가 스마트폰이 인도 시장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으면서 애플은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잃어가는 형국이다.

실제로 인도는 국민 평균 연봉이 아직까지 낮다. 그러다 보니 250달러 이하 저가형 스마트폰에 대부분 수요가 집중되어 있다. 애플 스마트폰은 500달러 이상 모델이 대부분인 만큼 어찌보면 애플의 존재감이 인도 시장에서 희미해지는 건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애플은 인도 현지 언론이 아이폰4를 인도에서 재판매할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 부인했지만 결국 인도 시장에서 아이폰4 8GB 모델을 2만 3,000루피에 재판매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기준으로 최신형 모델인 아이폰5s나 애플 입장에선 저가인 아이폰5c 같은 모델도 인도 시장에선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았다. 이에 비해 저렴한 아이폰4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이유로 재판매를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애플은 2012년 10∼12월까지 시장 점유율 4%를 기록했지만 2013년에 들어서면서 1분기 점유율은 1.4%까지 곤두박질 친다. 같은 시기 삼성전자는 점유율을 33%에서 42%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이런 초조함이 당시 기준으로 4년 전 모델을 다시 불러오게 됐지만 결국 떨어지는 점유율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는 인도 제조사로부터 설계와 제조 하청을 받아왔다. 하지만 제조를 하청받으면서 인도인의 취향을 알 수 있게 됐고 결국 직접 판매까지 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추가 비용 감소에 성공했고 더 이상 인도 기업이 파고들 여지를 없애버렸다고 할 수 있다. 또 가격 경쟁이 치열한 인도 시장을 휩쓸 만한 우수 제품을 개발, 판매해 거대한 인도 시장 점유율은 물론 글로벌 판매 전략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 시장에서 급성장한 트랜션(传音控股)은 아프리카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시장이 포화 상태로 접어들면서 인도는 가장 유망한 시장으로 시선을 한몸에 모으고 있다. 인도 시장에서 중국 스마트폰이 약진하는 건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의 존재감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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