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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농업이 만났을 때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은 품종 개량을 통한 식량 증산을 뜻한다. 물론 이 같은 녹색 혁명은 현재진행형. 기존 품종보다 더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있도록 벼나 밀 같은 걸 개발하기 위해 질소 흡수 능력을 끌어올린 유전자를 식별하고 비료를 조금만 써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새로운 품종 벼를 개발하기도 한다.

녹색혁명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건 1940∼1960년대다. 더 많은 수확량을 기대할 수 있는 품종을 도입하거나 효율적인 관개 시설, 화학 비료와 농약을 대량 투입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곡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것. 이 같은 노력 덕에 1961년 당시 7억 7,400만 톤이던 전 세계 곡물 수확량은 1985년에는 2배가 넘는 16억 2,000만 톤까지 높아졌다.

물론 이 같은 녹색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곡물 재배 기술에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곡물을 포함한 식물이 성장하려면 질소 같은 영양분이 당연히 필요하다. 영양분과 미생물이 많은 비옥한 토지라면 작물이 충분히 이를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화학비료가 필요하다. 지난 2015년 한 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1억 400만 톤에 달하는 비료가 쓰였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화학비료를 대량 사용하게 되면 농민이나 환경 양쪽에 다 유해할 수 있다. 강이나 호수, 바다에 흘러 들어가면 수중 산소를 줄여 물고기를 비롯한 수생 생물을 질식시켜버리는 원인이 되어버릴 수 있다. 적은 비료로 높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는 품종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과학원 연구팀은 식물의 질소 흡수 불량과 저신장 원인으로 지목되는 DELLA 단백질에 주목했다. 기존 작물은 식물 호르몬인 비레렐린(gibberellin)으로 DELLA 단백질 분해를 촉진시킨다. 하지만 녹색혁명 시절 개발된 품종은 태풍이나 계절풍으로 수확 전에 작물이 쓰러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식물 길이가 짧은 품종 개량을 했다. 연구팀은 당시 개발한 품종에선 DELLA 단백질 분해 시스템이 어떤 이유에선지 작동하지 않는다고 봤다.

연구팀은 길이가 짧은 벼 36종의 DNA를 비교하고 품종별 질소 흡수 능력을 조사했다. 그런 다음 DELLA 단백질 유전자와 성장조절인자(GRF4) 유전자를 살펴봤다. 그 결과 GRF4가 식물에 질소와 탄소 흡수를 촉진시키고 신진대사와 성장을 돕는다는 걸 발견했다.

연구팀은 GRF4를 더 많이 형성할 수 있는 벼를 개발해 재배했다. 그 결과 녹색혁명 시절 개발된 품종보다 적은 비료만으로 충분한 수확량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이 벼를 새로운 품종으로 등록하고 특허를 신청한 상태라고 한다.

품종 개량 외에도 애그리테크(AgriTech) 그러니까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미래 농업에 대한 관심은 높다.

전 세계 인구는 2100년 경에는 112억 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 같은 인구가 필요한 음식물을 생산하는 건 생존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작 기술 가운데 대표적인 게 LED 조명을 이용해 작물 성장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 같은 곳은 공간 제약이 심한 우주선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재배 면적대비 수확량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나사는 이를 위해 적은 공간에서 더 많은 작물을 수확하는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기술을 응용하면 지구상에서도 효율적으로 더 많은 작물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호주 연구팀은 최근 이런 분야에서 쓰이는 LED 광원을 이용해 작물 성장 속도를 끌어올리는 방법, 작물별 적합한 빛 파장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LED를 이용하면 1년 동안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횟수는 벼는 4번, 밀과 콩, 보리는 6번에 달했다고 한다. 1년에 한 번만 수확하는 게 아니라 빠르면 2개월 만에 작물을 수확하고 다음 재배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작물에 하루 22시간 동안 빛을 쏘여 성장을 촉진시켰다. 광원으로 LED를 써서 이전에 쓰던 백열등보다 에너지 절감 효과도 높았다고 한다. 밀과 보리는 1m2당 900개 밀도로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작물 수확량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해충에 강한 유전자 변형 작물을 기르는 게 유력하게 거론되어 왔지만 LED 광원을 이용해 재배하면 더 많은 수확이 가능해지고 경지 면적당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ED 광원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실제로 진행 중이다. 수직 농장도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최근 물을 거의 쓰지 않고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수직 농업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두바이에 1만 2,000m2에 이르는 토지에 세계에서 가장 큰 수직 농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직 농장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곳은 크롭원홀딩스(Crop One Holdings)와 에미리트플라이트케이터링(Emirates Flight Catering) 합작사로 4,000만 달러(한화 449억 원대)를 들여 올해 11월부터 수직 농장 건설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수직 농장의 장점은 LED 조명과 신재생에너지만 이용한다. 야외에 위치한 농장보다 물 사용량도 절약할 수 있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실내에서 야채를 재배할 수 있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 들어설 수직 농장은 실외에서 야채를 재배할 때보다 99%나 물을 절약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전력의 경우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만으로 충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일부는 외부에서 끌어오게 된다. 이 수직 농장에서 재배된 야채나 채소는 2019년 12월 첫 수확을 하게 된다. 수확이 시작되면 하루 최대 2.7톤까지 야채를 공항 라운지와 기내식 재료로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에어로팜(AeroFarms) 같은 도심 내 식물 공장을 추구하는 곳도 있다. 이곳 역시 LED 조명을 이용하고 물 사용량의 경우 미스트를 자동 제어하도록 해 물 사용량을 95%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식물 공장이라고 하면 수경 재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에어로팜은 물을 안개처럼 뿌려 사용량을 줄이면서 식물을 재배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식물 공장은 당연히 재배 시설을 수직 방향으로 쌓는 수직 재배(Vertical Farming)를 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이를 통해 도시 내에서도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야채를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설물은 태양광 대신 광합성을 LED가 돕는다. 일반 수경재배와 마찬가지로 흙은 이용하지 않고 앞서 밝혔듯 뿌리를 물에 담그는 게 아니라 미스트를 이용해 사용량을 최대한 줄였다. 뿌리가 자라는 공간에 영양분을 함유한 미스트를 분사해주는 것. LED 광원 역시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되는 파장을 결합해 조사하고 필요 없는 빛은 차단한다. 광원 조정은 모두 전자동이며 실내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같은 식물 공장은 수확 시기를 일반 야외 농장보다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수직 재배는 전 세계 수질 오염 원인 중 70%가 농장에서 나오는 물 탓이라는 조사 결과나 마실 수 있는 물 중 70%는 농업용수로 쓰이고 있다는 점, 지난 40년 동안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토양 중 무려 3분의 1이 사라졌다는 점 등 농지 부족과 물 부족,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또 도심에서 재배하는 만큼 수확한 농작물을 소비자에게 보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운송에 들어가는 에너지나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등 장점을 기대해볼 수 있다.

또 지난 2016년 가동을 시작한 선드롭 팜(Sundrop Farm)은 바닷물과 태양광만으로 사막에서도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농장이다. 앞서 아랍에미리트도 그렇지만 물 부족 현상에 허덕이는 곳은 지구상 곳곳에 많다. 당연하지만 사막 같은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경작은 어려운 일. 선드롭 팜은 이 같은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과 해수를 이용해 토마토 등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막 내에 온실 같은 시설물을 만들고 중앙에 위치한 태양광 시설물을 통해 발전하고 해수를 담수화하는 장비를 더한다. 이를 통해 작물 생육에 필요한 담수를 만들어내는 것. 동시에 발생한 열로 온실 난방을 하고 바닷물은 시스템 냉각에 활용한다. 이 농장에선 토마토를 비롯해 채소나 딸기 같은 과일 등 다양한 품종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이 농장의 또 다른 장점은 코코넛 껍질 같은 걸 쓰는 등 기존 농업에선 쓰지 않는 토양을 이용하고 깨끗한 물이어서 농약 없이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곳은 토마토를 연간 1만 7,000톤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한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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