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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반창고

인체에는 상처가 나면 그냥 놔둬도 자연 치유가 되기도 하지만 감염 우려가 높은 경우도 있다. 실제로 감염은 비외상성 사지 절단을 하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만 2,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같은 문제에 봉착한다고 한다. 물론 적절하게 약물만 투여해도 치료율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 상처면 괜찮겠지” 같은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약을 내장한 스마트 반창고가 있다면 이 같은 적절한 투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터프츠 대학 전기컴퓨터 공학과 새미어 선쿠세일(Sameer Sonkusale) 교수는 생활 습관병이 늘어나면서 만성 상처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연구팀은 이런 상처에 대한 대책을 위해 스마트 반창고를 개발했다. 상처를 성공적으로 치료하면 pH값은 5.5∼6.5 가량이라고 한다. 반면 감염된 상처는 6.5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스마트 반창고는 이를 위해 pH값과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를 내장해 상처 치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필요할 때에는 센서가 읽어 들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젤을 가열, 약제를 방출한다. 알아서 상처 상태를 파악하고 또 알아서 약물을 투여해준다는 얘기다.

스마트 반창고의 두께는 3mm 미만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부분은 재사용도 가능하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뺀 다른 부분은 1회용으로 만들어 저렴한 비용에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다. 이렇듯 내장 센서와 증상에 따른 항생제만 바꾸면 스마트 반창고는 상처 뿐 아니라 생각보다 폭넓은 분야까지 치료에 활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기술과 의료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지난 몇 년간 계속되어 왔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이번 스마트 반창고도 그렇지만 병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사기를 개선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 주사기의 역사는 길다. 1853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 의사 알렉산더 우드가 특허를 내면서 시작된 것이니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0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

반창고와 달리 주사기는 백신을 직접 투여, 예방 접종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체내에 항체를 만들어서 면역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질병을 불러오는 병원체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백신 투여에는 지금도 주사기를 쓴다.

문제는 주사기 자체다. 어린 시절 불주사를 맞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1회용 주사기가 없던 시절이다 보니 주사기와 바늘을 일일이 소독해야 했다. 한 번 쓰면 불로 바늘을 소독하고 나서 재사용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떠나 바늘 자체를 피부에 직접 깊숙하게 찌르기 때문에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20%가 주사 바늘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거부감이 높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저개발국가 같은 곳에서 지금도 불 같은 최소한의 소독도 하지 않은 채 주사바늘을 몇 번씩 그대로 쓴다는 것이다. 자칫 2차 오염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보건기구 WHO에 따르면 130만 명이 2차 감염으로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다.

지난 2014년 호주 퀸즐랜드대학 생물공학나노기술연구소 마크 캔들(Mark Kendall)은 주사기를 대체할 수 있는 나노패치(Nanopatch)를 제시해 시선을 모은 바 있다. 나노패치는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형태를 취한다. 가로세로 1cm짜리 작은 반창고 같은 형태지만 피부에 접촉하는 면에는 작은 돌출부 400여 개가 있다. 이게 바늘을 대신하는 것이다. 촘촘하고 작은 바늘 하나하나는 모두 반도체 제조 기술을 활용해 성형한 것.

나노패치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바늘 부위에 백신을 발라뒀다가 필요할 때 피부에 붙여서 백신을 투여한다. 팔 부위에 대고 꽈 누르기만 하면 피부에 붙일 수 있고 당연히 통증도 전혀 없다고 한다.

나노패치 바늘은 피부 표피를 뚫고 백신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할 안쪽까지 바늘을 넣는다. 주사바늘은 사실 이 부분을 관통해버리지만 나노패치는 효과적 위치에 바늘을 투여해주는 것이다. 덕분에 주사기라면 백신 6,000나노그램을 투여해야 한다면 나노패치로는 6.5나노그램이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10달러를 10센트로 줄이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는 얘기다. 덕분에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할 수 있다.

또 기존 백신은 콜드체인으로 운송해야 기능 저하가 없지만 나노패치는 냉장 상태가 아닌 일반 건조 상태여도 무방하다. 23도 정도에 보관한다면 기능 저하 없이 1년 이상 유지할 수 있다. 파푸아뉴기니 같은 곳엔 실제로 백신 보관용 냉장고가 전부 800대 뿐이라고 한다. 노후화된 것도 많다. 나노패치는 비용이나 보관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같은 해 젤 형태 물질을 상처 부분에 바르면 혈액 응고 작용을 높여 상처를 막는 효과를 주는 미래형 반창고 베티젤(VetiGel)이 발표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수네리스(Suneris), 지금은 크레실론(Cresilon)로 사명을 바꾼 이 기업이 개발한 베티젤이 그것.

당시 공개한 장면을 보면 동물 간에 메스로 상처를 내고 삽입관을 통해 실제 혈액을 흘려 출혈 상태를 그대로 재현한다. 이어 베티젤을 뿌리면 몇 초 만에 출혈이 멎는다. 베티젤은 식물에서 추출한 고분자 화학물 성분을 주로 이용한 것이다. 여기에 동물 체온을 더해 응고하는 성질을 갖춘 것. 신제 조직과 유사한 구조를 형성해 출혈을 막는다. 상처가 발생하고 출혈이 있는 상태라면 해당 부위에 베티젤을 뿌린다. 혈액 응고가 일어나면서 출혈은 금세 멎게 된다. 넉넉하게 뿌려서 불필요하게 된 베티젤은 전용 처리제를 이용해 손쉽게 제거할 수도 있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베티젤은 혈액에 응고 작용을 활성화해주는 물질로 생체 적합성이 있는 재료로 만든 만큼 몸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안전성을 겸비한 물질이기도 하다. 피부 같은 곳에 존재하는 세포와 유사한 상태를 재현하는 것으로 혈액을 응고시켜 지혈을 촉진하는 기능을 가진 섬유소 생성을 촉진한다. 작은 상처에서 굵은 혈관 손상에 의한 대량 출혈까지 대응할 수 있고 기존처럼 압력을 가해서 지혈을 할 필요도 없다. 의료 시설이 없어 충분한 조치가 어려웠던 곳에서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 베티젤은 상처 부위에 바르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응고 작용을 발휘한다. 즉각적인 지혈 작용을 기대할 수 있는 데다 효과가 강하고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베티젤은 식물 성분을 주원료로 삼았고 높은 내구성과 흡수성을 겸했다. 특별한 사전 준비나 방법을 알 필요도 없다. 도포용 주사기에 담아 실온에서 보관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듯 반창고 하나, 주사기 하나에도 기술을 결합해 편의성이나 치유 효과를 높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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