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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성 기술과 인텔의 성장과 위기

1993년 x86 아키텍처 CPU인 펜티엄 브랜드를 구축한 인텔은 펜티엄II(Pentium II) 저가형으로 저가형 엔트리 브랜드인 셀러론(Celeron)을 발표했다. 이런 셀러론 배경에는 인텔의 기술 전략인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와해성 기술은 하버드경영대학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제창한 것. 기술은 원래 주류 시장 주요 고객이 평가하는 성능 지표에 따라 진화한다. 한편 와해성 기술은 기존 기술보다 성능은 낮지만 새로운 가치 기준으로 특징을 가진 와해성 기술을 진화시켜 틈새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인텔 3번째 직원이자 전 회장이기도 한 앤디 그로브는 와해성 기술을 제창한 크리스텐슨 교수의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10년간 읽은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또 저서를 읽은 것 뿐 아니라 크리스텐슨 교수의 이론을 인텔 경영 전략에도 포함시켰다. 당시부터 인텔은 AMD와 경쟁 관계에 있었고 데스크톱PC용 CPU 시장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앤디 그로브는 펜티엄 브랜드 점유율을 희생시킬 각오로 저가격, 저이익율인 셀러론 시리즈 출시를 결정했다.

셀러론은 펜티엄II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출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L2 캐시를 탑재하는 등 개선을 한 2세대 셀러론은 경우에 따라선 펜티엄II 이상 성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명되면서 저가격까지 등에 업고 성공을 거뒀다. 셀러론 출시에 따라 셀러론과 펜티엄이 점유율을 나눴지만 결국 인텔은 시장 점유율 35%를 획득하게 됐다. 그 결과 와해성 기술 혁신에 따라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1991년부터 전개하던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캐치프레이즈도 침투하면서 2000년 전후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데스크톱PC를 상징하는 대명사 같은 기업으로 데스크톱PC용 CPU 시장 패권을 거머쥐었다.

1987년부터 인텔 경영을 맡던 앤디 그로브는 1998년 CEO에서 물러나고 2005년 회장직에서 은퇴한다. 같은 해 인텔 CEO로 취임한 건 폴 오텔리니. 그는 당시 맥을 개편하려는 애플과 제휴해 취임 이후 서서히 인텔 기반 맥을 실현했다. 2006년 개최된 애플 기조연설에선 인텔 기반 아이맥이 처음 발표됐고 이 자리에서 오텔리니는 작업복 차림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때까지 보면 완전히 인텔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애플과 인텔의 거래는 인텔에 있어 지금까지 실현될 수 없었던 것으로 중요했다. 하지만 인텔 데스크톱PC용 CPU 시장 지배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인텔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는 기업과 관계를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중요했다.

사실 인텔 기반 아이맥을 발표한 지 1년 뒤 등장한 자사 스마트폰인 아이폰 칩을 인텔이 개발한다는 얘기도 있었고 실제로 인텔과 애플간 협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텔 칩 탑재 아이폰은 나오지 않았다. 이유에 대해 오텔리니는 퇴임 1개월 전 이뤄진 인터뷰에서 인텔과 애플간 협의는 아이폰이 도입되기 전이며 모두 아이폰이 뭘 할지 몰랐다면서 애플이 관심을 갖던 칩 가격은 인텔의 예측 비용보다 낮았으며 그 비용에 수량 예측도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예측 비용은 잘못된 것으로 수량은 예상보다 100배였다고 회고했다.

인텔은 당시 이미 PDA나 3G 휴대폰에 ARM 아키텍처 기반 32비트 프로세서인 엑스스케일(XScale)을 출시했다. 만일 인텔이 엑스스케일에 더 전력 효율을 향상시키도록 제품을 개발하고 아이폰 탑재에 성공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애플은 최근 맥에 인텔 칩을 빼고 2020년 11월 11일 자체 개발한 SoC인 M1을 탑재한 첫 맥을 발표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인텔과 애플 칩을 벤치마크 툴(SPECint2006)로 비교한 결과를 연도별로 보면 처음에는 인텔이 앞섰지만 최근에는 애플이 앞선다. 1995년 크리스텐슨 교수가 발표한 와해성 기술 혁신 이론에선 처음에는 성능적으로 열등한 기술도 시장점유율을 크게 확대하면서 기존 기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개선되어 간다고 말한다. 인텔 코어i9와 애플 SoC를 비교한 그래프는 이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애플이 M1을 발표한 시점이 바로 인텔과 애플이 교차하는 순간일 수 있다. ARM 기반 칩이 인텔에 있어 마지막 아성인 서버 비즈니스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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