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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직접? 베네수엘라가 가상통화 발행한 이유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부가 공식 발행하는 가상통화가 나온다. 2월 20일(현지시간) 남미에 위치한 베네수엘라 정부가 가상통화인 페트로(Petro)를 발행한 것.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세계 첫 국가 단위 가상 통화를 발행한다”고 밝혔듯 페트로는 국가가 발행한 첫 가상통화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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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베네수엘라는 왜 가상통화 발행을 선택했을까. 베네수엘라는 남비 최대 산유국이다. 하지만 독재 성격이 짙은 마두로 대통령의 정책을 둘러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톨령이 베네수엘라에 경제 제재를 실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하고 EU는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는 등 전 세계 각국의 압력이 높다. 그 탓에 베네수엘라에선 2,60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통화 평가 절하 같은 조치를 취하는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정권이 선심성 정책이나 무리한 가격 통제를 해 혼란까지 겹치면서 유가 하락으로 외화 수입도 급감하고 있다는 점도 급속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2015년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111.8%, 2016년은 254.39%였다.

이런 와중에 베네수엘라 정부가 가상통화 페트로를 발표한 것이다. 페트로는 베네수엘라가 보유한 천연자원, 석유가 가치를 담보한다. 공식 사이트에도 베네수엘라 정부와 풍부한 원유 자산에 의해 가치를 뒷받침한다고 밝히고 있다. 설명에 따르면 또 높은 블록체인 및 정보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했고 직접 거래나 금융, 경제적으로 독립 워크프레임 하에서 정부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전자자산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페트로의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1,500억 달러(한화 162조원대)에 달하는 외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가상통화 발행은 무모하다는 의견도 있다. 또 미국 정부는 경제 제재 상태에서 가상통화를 발행하는 것 자체가 제재 정책에 저촉된다는 점을 베네수엘라 정부에 경고하고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 정부 역시 이번 가상통화 발행이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발행한 페트로는 1억 PTR. 1PTR당 단가는 1월 중순 베네수엘라 원유 가격을 바탕으로 60달러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외신 보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정부가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60% 할인을 제안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구매자 정보는 아직까지 알려진 게 없으며 실제로 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도 알 수 없다. 페트로 사전 판매 첫날 조달한 자금은 7억 3,500만 달러라고 한다.

페트로 발행은 앞서 밝혔듯 미국 주도 경제 제재 영향을 회피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원유 자산으로 가치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불투명한 부분이 아직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페트로를 얻으려면 먼저 공식 사이트(http://elpetro.gob.ve/index-en.html)에서 페트로 디지털 지갑을 개설한 다음 지갑이 생성하는 이메일 주소를 통해 송수신을 하면 된다. 로드맵에 따르면 2월 페트로 블록체인 초기 테스트를 실시하는 한편 법률 정비 등이 실시된다. 3월에는 비공개 판매를 하면서 페트로 네트워크 조정을 하고 ICO를 한다. 이후 4월에는 최종 수정과 정식 인증을 할 예정이다.

국가가 가상통화를 공식 발행한다는 건 지금까지 나온 여느 가상통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정적 신용도가 인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의 상태나 운영 방식, 미국의 제재 저촉 등을 감안하면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가상통화 발행에 따라 정부 단위의 가상통화 발행에 대한 관심도 다시 환기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비공개 정부 회의에서 러시아 정부 공인 가상통화 크립토루블(CryptoRuble) 발행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은 통신정보장관 니콜라이 니키포로프가 밝혔다고 한다.

물론 러시아 정부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가상통화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무렵부터 정부 내에서 자체 가상통화 도입을 검토해왔다고 한다. 물론 크립토루블은 비트코인 같은 가상통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다고 한다. 채굴을 해서 새로운 통화를 만들 수 없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통화는 컴퓨팅 작업을 대신 수행하는 대가로 새로운 통화를 채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크립토루블은 이 방식을 쓸 수 없고 대신 정부에 준하는 공공기관이 가상통화 발행과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크립토루블은 일반 통화인 루블과 언제든지 교환할 수 있지만 이 때 크립토루블의 출처를 입증할 수 없다면 세금 13%가 부과되는 구조라고 한다. 블록체인 구조를 이용해 통화 흐름을 추적하고 부정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걸 보장, 돈세탁 수단으로 크립토루블이 쓰이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다. 또 통화 토큰을 구입하거나 매각할 때 발생하는 차액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한다.

당시 보도에선 유라시아경제공동체 그러니까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국가에서 가상통화 도입이 논의 중이라는 걸 엿볼 수 있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가 도입하려는 이유가 러시아가 빨리 도입하지 않으면 다른 이웃 국가가 몇 개월 안에 기선을 잡을 것이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각국 정부마다 가상통화를 공식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다를 수 있지만 기존 가상통화, 예를 들어 비트코인 같은 경우에는 통화발행기관 부재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통화 발행을 맡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정부기관 자체에서 비트코인 같은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문제에 대해선 퍼블릭 혹은 하이브리드 형태 블록체인을 통해 러시아의 예처럼 공공기관 혹은 정부기관이 발행이나 관리를 맡도록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도 다른 문제가 있다. 대다수 국가가 정부 방침을 명확하게 하고 관련 법안을 제정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대다수 국가나 정부기관에선 여전히 가상통화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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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첫 국가 단위 가상통화 발행은 베네수엘라의 상황이나 여건(제재 같은) 등을 감안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통화가 실제 현실화(?)될 수 있는 정책 수립 등을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덧. 베네수엘라 정부가 페트로 외에 페트로 골드(petro gold) 발행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페트로가 원유를 기반으로 삼았다면 페트로 골드는 금이라는 또 다른 자원을 바탕으로 한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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