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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해커집단, 어나니머스의 귀환

지난 5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미니애폴리스 근교에서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폭행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부터 해커 집단인 어나니머스(Anonymous)가 다시 인터넷에 돌아왔다는 보도가 퍼지기 시작한다.

어나니머스느느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지도자를 자칭한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 ISIL에 선전포고를 하고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영국 잉글랜드은행, 프랑스은행 등 전 세계 20개 이상 중앙은행에 대한 디도스(DDoS) 공격을 실행하는 등 핵티비즘(hacktivism)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익명 해커 집단이다.

어나니머스가 돌아왔다는 소문은 영상 한 편에서 시작됐다. 영상에는 포악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관 장면과 백인 경찰에 살해 당한 플로이드 사진, 그 밖에 경찰 살인 사건 피해자를 비춘 뒤 익명의 상징인 가이포크스 가면을 쓴 인물이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대한 메시지라며 많은 범죄를 세상에 폭로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어나니머스의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대한 공격 예고는 젊은층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었고 어나니머스 관련 트위터 계정에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새로운 팔로어가 유입된다. 커뮤니케이션 앱 디스코드(Discord)에선 어나니머스 팬이 수천 명 규조 서버를 개설하고 활동을 축하하기도 한다.

어나니머스의 경찰 해킹 공격 예고 이후 실제로 해킹 피해도 보도되고 있다. 2020년 5월 30일과 31일 시카고경찰 스캐너가 해킹되어 힙합그룹 NWA의 경찰을 조롱하는 음악과 테이 존데이(Tay Zonday)의 흑인 차별을 소재로 한 음악이 경찰서에서 재생됐다. 어나니머스가 경찰에 건 해킹으로 의심됐고 같은 시기 미니애폴리스 경찰 웹사이트가 디도스 공격으로 다운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3주가 지난 6월 16일 어나니머스는 미국 전역 200개 이상 경찰, 핵융합센터, 법집행기관 등 기관에서 270GB 분량 기밀문서를 훔쳐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블루릭스(BlueLeaks)라고 명명한 이 유출 파일에는 경찰에 의한 불법 행위 증거가 될 만한 정보는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를 통해 연방과 미니애폴리스 법집행기관에 의한 플로이드를 살해한 경찰관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던 것이나 이번 사건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파한 계기가 된 사실이 나와 있다. 또 법집행기관이 소셜미디어에서 플로이드 죽음 이후 경찰에 항의를 하던 계정을 감시하고 있던 것도 밝혀졌다.

어나니머스가 귀환했다는 계기가 된 동영상에는 URL 워터마크(anonews.co)가 붙어 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영국 회사(Midialab)를 통해 운영자에게 연락한 결과 메릴랜드 교외에 거주하는 한 남성과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이 남성은 경찰의 잔학성에 대해 인터넷에 비판해왔는데 미디어랩이 어나니머스 정책에 동참하고 활동을 지원하고 싶다는 연락을 하자 사이트에 게재할 동영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는 영상 속 가면을 쓴 남성은 과거 어나니머스 관련 영상을 편집해 재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보면 어나니머스가 진짜로 돌아온 것인지 관심을 갖게 된다. 어나니머스가 돌아왔다는 소문의 원인이 된 동영상이 어나니머스를 지원하는 팬 같은 인물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래 어나니머스는 한 가지 목적에 소규모 그룹이 협력하며 해킹을 분산 실시하는 집단이고 누구나 어나니머스라는 슬로건 하에 활동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누구나 깃발을 들면 어나니머스라는 이름 하에 활동할 수도 있다.

원래 어나니머스의 기원은 2000년대 중반 트롤을 자칭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장난 행위를 반복한 오브리 코틀(Aubrey Cottle)이라는 존재가 있다. 그를 비롯한 트롤은 스스로를 어나니머스라고 호칭했는데 이유는 게시판에 이름을 입력하지 않고 코멘트를 게시하면 무명을 뜻하는 어나니머스로 표시됐기 때문이다.

이런 코틀이 20세였던 2007년경 그는 집에 미국 CIA에 해당하는 기관인 캐나다안전보장국에서 근무하는 남성이 찾아온다. 코틀에게 그는 알카에다와 테러조직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냐고 물었고 코틀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거절했다. 당시 코틀 등 어나니머스는 집단으로 온라인 게임 사용자와 대화방에서 개인을 공격하는 수법을 벌였지만 여러 서비스가 트롤에 의한 집단 공격을 금지하자 어나니머스는 결국 코틀이 만든 곳(420chan)으로 활동 거점을 옮긴다. 이에 따라 코틀은 어나니머스의 사실상 리더가 됐다. 어나니머스의 대명사가 된 가이포크스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도 코틀 등으로 이유는 단순히 브이포벤데타(V for Vendetta) 팬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폭스뉴스가 어나니머스를 테러리스트인 것처럼 보도한다. 이때까지 어나니머스 회원은 해킹을 일종의 취미로 해왔지만 이 보도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와 정부의 시각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후 2007년 경 어나니머스는 네오나치를 신봉하는 헐 터너 등에 대한 성희롱 행위에 1년 대부분을 보낸다. 당시 어나니머스가 터너를 대상으로 삼은 건 단순히 쉬운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너를 철저하게 해킹한 결과 그가 FBI 정보 제공자인 게 발각됐기 때문에 공격은 끝을 맺게 된다.

터너의 다음 표적을 찾던 어나니머스는 사이언톨로지에 주목한다. 폭스뉴스에 의해 테러리스트인 것처럼 보도된 뉴스에 영감을 받은 어나니머스 일원이던 한 인물이 몇 년에 걸쳐 사이언톨로지를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발표했다. 이 영상은 입소문을 타고 퍼졌고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항의 시위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발전한다. 뉴욕에서 일어난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항의 시위에선 수백 명 시위자 거의 대부분은 가이포크스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때 어나니머스 활동을 이끌었던 코틀이지만 파벌이 나뉘면서 결국 어나니머스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은 잃게 됐다. 이후 어나니머스 활동이 널리 알려진 건 줄리안 어산지의 위키리크스에 협력하고 미국 기밀 문서를 유출하는 등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는다. 지금은 어나니머스는 전례 없이 경계심이 강해져 더 이상 종단간 암호화 채팅 클라이언트 등을 이용해 통신을 한다. 또 소셜미디어는 트위터를 이용하고 있으며 다른 플랫폼은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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