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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기가 필요했던 ‘임상시험의 역사’

인간을 대상으로 질병 치료나 예방 약물에 대한 유효성,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임상시험은 이미 널리 알려진 질병과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질병 치료에 중요하다. 사실 대상자를 여러 그룹으로 나눠 약 등에 대한 효과를 비교 검증하는 임상시험 디자인은 수세기에 걸쳐 고안한 것이다.

초기 임상 연구 중 하나는 1,000년 전 중국에서 행해진 실험이다. 1061년 북송 과학자이자 재상이던 소송(蘇頌) 등이 편찬한 본초도경이라는 책에는 인삼 약효에 대해 이뤄진 임상시험이 기록되어 있다. 본초도경에 따르면 인삼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2명을 선정하고 한쪽에는 인삼을 먹이고 다른 한쪽에는 아무 것도 먹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1,500∼2,000m 달리도록 하자 인삼을 먹지 않은 사람은 심한 호흡 곤란을 일으켰지만 인삼을 먹은 쪽은 원활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례는 치료하지 않은 대조군을 이용해 수행한 실험에 대한 세계 첫 기록이며 현대 임상 연구에서도 치료를 받지 않은 혹은 위약을 준 대조군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또 인삼 약효에 대한 연구는 현대에도 이뤄지고 있으며 2018년 연구에선 인삼이 발기부전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대황은 기원전부터 하제로 쓰여온 식물로 18세기 영국에선 영국산이나 터키산 등 전 세계 다양한 장소에서 생산된 대황이 유통되고 있었다. 영국 의사 페리(Caleb Parry)는 영국산 저렴한 대황과 터키산 비싼 대황 사이에서 하제 효과에 차이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1786년 페리가 실시한 연구에선 페리가 환자에게 준 대황 종류를 정기적으로 전환, 종류별로 효과가 얼마나 다른지 측정했다. 그 결과 페리는 일부러 값비싼 터키산 대황을 사용할 이점이 없다는 결론을 지었다. 또 대황에는 완화제 작용을 하는 유도체가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하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19∼20세기 초 아시아에서 각기환자가 많았다. 심장 기능 저하와 신경 장애를 일으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질병으로 치료와 예방은 관심거리였던 것. 1905년 쿠알라룸푸르 정신병원에서 각기가 유행하자 이 지역에서 외과의사를 맡던 윌리엄 플레처는 각기 예방에 관한 실험을 실시했다. 환자마다 번호를 할당하고 병동을 나눠 한쪽은 현미식, 다른 쪽에는 백미를 주고 경과를 관찰한 것이다. 실험을 끝냈을 때 백미 음식을 받은 환자 중 15%가 각기로 사망했고 현미식 환자는 아무도 죽지 않아 현미식의 유효성을 확인했다.

현대 윤리관으로 보면 문제점이 있었건 플레처의 실험은 환자를 무작위로 선별해 비교한 초기 임상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임상시험에서도 환자를 무작위로 선별해 비교하는 건 임상시험 정확도를 높이는데 중요하다. 참고로 만성적 비타민 B1 부족이 각기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미 다이어트는 비타민 B1을 보충해 각기에 유효하다.

1948년 역학자이자 통계학자로 알려진 오스틴 브래드포드힐이 결핵 치료를 연구하는 세계 첫 무작위 비교 시험을 실시했다. 그는 난수표를 이용해 환자를 선별하고 항생제 스트랩토마이신을 이용해 치료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을 결정했다. 또 담당 의사고 어떤 환자에게 스트렙토마이신을 투여하고 있는지 알리지 않고 환자에서도 임상시험 실시 여부를 모르게 했다. 따라서 의사나 환자도 치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모르게 하는 방법을 맹검법(blinded experiment)이라고 하며 위약 효과에 의한 증상 개선이나 관찰자 편향을 방지하는 의미가 있다. 지금은 새로운 치료제를 테스트하기 위해 이중맹검법을 이용한 무작위 비교 시험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지금까지의 여정은 상당히 길었다고 할 수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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