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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사와 퍼블리셔의 역사

게임 업계에는 게임 자체를 개발하는 개발사와 게임 판매와 유통을 하는 퍼블리셔가 존재하며 이들은 각자 역할을 하면 게임 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개발사와 퍼블리셔라는 존재가 태어난 데에는 애퍼지소프트웨어(Apogee Software)라는 기업이 크게 기여했다.

1987년 설립된 애퍼지소프트웨어는 원래 창업자 스콧 밀러가 직접 만든 MS-DOS 기반 게임을 판매하던 곳이다. 밀러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크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기업 인포컴(Infocom)에 자작 게임이 거절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때 밀러는 애퍼지소프트웨어를 시작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좋았다면 기부를 하라는 형태로 게임을 공개한다. 하지만 매출은 1만 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밀러는 판매 형태를 연구한다. 1987년 애퍼지소프트웨어가 발매한 킹덤오브크롯(Kingdom of Kroz)는 60스테이지에 이르는 볼륨이 큰 어드벤처 게임이었다. 밀러는 이를 3부작으로 분할하려고 시도한다. 1편은 무료로 공개하고 나머지 2편 에피소드를 유료로 판매한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1편을 무료로 즐긴 사람 중 2번째 작품 이상을 구입한 비율은 1∼2%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 출시 당시 수표로 판매했지만 나중에 신용카드를 이용한 전화 주문도 지원하면서 전성기 매출은 주당 2,000달러에 달하게 된다.

게임 사업 가능성을 깨달은 밀러는 1990년 직장을 그만두고 애퍼지소프트웨어에 전념하게 된다. 이때 애퍼지소프트웨어가 게임을 판매해줄 게임 개발자를 찾기 시작한다.

이렇게 밀러가 찾아낸 사람이 존 로메로, 존 카멕, 애드리안 카멕, 톰 홀 4명이다. 이들은 아이디소프트웨어(id Software)를 설립하고 뒤에 전설적인 FPS 게임 시리즈인 둠(Doom)을 제작한다. 이들 4명은 커맨더 킨(Commander Keen)이라는 게임을 개발해 애퍼지소프트웨어에 판매를 맡긴다.

커맨더 킨 1편은 1개월에 2만 달러 매출을 기록했고 로메로 등은 전업 제작자로 변신하게 된다. 아이디소프트웨어는 애퍼지소프트웨어를 판매자로 게임을 판매한 뒤 FPS 게임 장르를 확립한 기념비적인 게임으로 평가되는 울펜슈타인3D(Wolfenstein 3D)를 1992년 발표한다. 이 게임은 1년 이상 기간 동안 20만 달러 이상 매출을 기록하며 대히트를 기록한다.

1990년대 초반에는 액티비전(Activision)과 EA(Electronic Arts)도 퍼블리셔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액티비전과 EA는 퍼블리셔 계약 일부로 지적재산권을 관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개발사는 자신이 만든 게임 속편을 만들 수 없는 이상한 현상도 발생하기도 했다. 반면 애퍼지소프트웨어는 지적재산권에 관한 계약을 맺지 않고 어디까지나 마케팅 등 대행에 머물렀다. 따라서 90년대를 통해 아이디소프트웨어는 급성장을 하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 등장한 게 이후 포트나이트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에픽게임즈(Epic Games)다. 애퍼지소프트웨어는 3D렐름(3D Realms)으로 이름을 바꾸고 에픽게임즈 등과 손잡고 GOD(Gathering of Developers)라는 출판권 보호기관을 설립한다. 밀러는 GOD 설립에 즈음해 개발사 십계명(The Ten Developer Commandments)이라는 제목을 내건 개발사를 위한 조언집을 공개한다. 이는 지적재산권은 판매해선 안 된다, 상품화 계획 권리를 퍼블리셔에게 매도해선 안 된다, 일반적으로 실적이 없는 스튜디오는 로열티가 15%에서 시작하지만 매출에 따라 50%까지 늘어난다, 퍼블리셔와 계약하면 평균 75만 달러 또 히트작을 낸 스튜디오라면 200만 달러 선금 지급 같은 내용을 밝히고 있다. 보통 밝혀지기 어려운 계약금 정보까지 자세하게 공개하고 개발사가 공정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밀러의 뜻을 이어받아 에픽게임즈도 개발자 중심 계약을 하려 한다. 2020년 3월 에픽게임즈가 3사(genDESIGN, Playdead, Remedy Entertainment)와 맺은 계약은 개발자 측이 100% 지적재산권을 보유하며 에픽게임즈 측이 개발자 측 품질 보증과 현지화 마케팅, 모든 퍼블리싱 비용에 걸친 시장 개척 비용을 최대 100% 부담하며 개발자는 전체 이익 중 최소 50%를 차지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에픽게임즈가 운영하는 게임 유통 플랫폼인 에픽게임스 스토어에선 매출 중 12%를 스토어 측이 받고 나머지 88%를 게발사가 받는 계약을 맺는다. 한편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은 개발자 측은 매출 중 70%, 물론 매출에 따라 75∼80% 지분 변동 밖에 받을 수 없는 계약을 한다. 에픽게임즈 스토어와 비교하면 개발자가 더 받지 못하는 것.

이런 에픽게임즈 스토어 운영 방침은 팀 스위니(Tim Sweeney) 에픽게임즈 CEO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에픽게임즈 스토어 출시에 맞춰 수익 배분율이 양호하고 개발자에게 편리성을 줄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배적인 게임 스토어가 경쟁사보다 개발자에게 불리한 수익 분배율을 채택하면 제작자 측은 게임 가격을 낮출 지배적인 플랫폼을 피하게 될 뿐이라며 비교적 이익 배분율이 낮은 스팀에 의한 시장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에픽게임즈 스토어 점유율을 높이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그는 에픽게임즈 스토어 자체의 매력을 높이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을 이루는 건 무료 게임을 매주 공개하고 독점 타이틀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독점 타이틀을 전달하는 방법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독점 타이틀 전달에 대해 그는 트위터에서 스팀이 모든 개발자에게 88% 수익 배분율을 영원히 약속한다고 말한다면 에픽게임즈는 곧 독점 판매 계약을 취소하고 스팀에서 에픽게임즈 게임을 판매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공언한다. 스팀이 비싼 로열티를 시정하고 개발자 대우를 개선한다면 독점 타이틀 배달을 그만 둬도 좋다고 밝힌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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