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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맞은 유튜브는 어떻게 성장해왔나

유튜브(Youtube)가 등장한 건 15년 전이다. 당시 인기 있던 동영상 대부분은 TV 등 기존 미디어 채널이 촬영한 것으로 저작권 소유자 허가 없이 공유되고 있었다. 참고로 콘텐츠ID(Content ID)가 도입된 건 2007년의 일이다.

2005년 2월 14일 스티브 첸(Steve Chen), 채드 헐리(Chad Hurley)가 설립한 유튜브가 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익을 창출하기 훨씬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동영상을 올려온 젊은 층 덕분일지 모른다.

미시간대학 학생이던 데이비드 레흐(David Lehre)는 2005년 1월 28일 단편 영상인 마이스페이스 무비(MySpace : The Movie)를 자신의 사이트에 올렸다. 이를 본 사람들은 동영상을 내려 받아 유튜브에 올렸는데 불과 몇 주 만에 6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 자신의 공식 동영상으로 다시 올렸고 2020년 2월 24일 기준 공식 동영상 조회수는 100만회 이상이다.

인터넷에서 젊은층이 일약 유명해지면서 유튜브라는 새로운 서비스의 존재가 수많은 매체에서 거론됐고 데이비드 헤르는 MTV 내 학생을 위한 채널인 MTVU에서 일이 들어온다.

2005년 클립샤크(Clipshack), 브이소셜(VSocial), 그루퍼(Grouper), 메타카페(Metacafe), 레버(Revver), 아워미디어(OurMedia), 비메오(Vimeo)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가 존재했지만 당시 유튜브의 가능성에 주목한 머셔블은 유튜브가 이들 서비스를 훨씬 웃돌고 있다면서 블로그나 웹상이트 등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유튜브에는 인기 랩 영상 레이지 선데이(Lazy Sunday)가 등장한다. LA타임스는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신문에 URL을 게재했다. 동영상 저작권을 소유한 곳은 주요 미디어인 NBC다. 유튜브는 콘텐츠ID라는 프로그램을 2007년 도입해 저작권으로 보호된 콘텐츠를 자동 인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 이전이었기 때문에 동영상 복제물이 다수 올라가면 그때마다 사이트에서 제거해야 했다.

동영상 복제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보도한 건 뉴욕타임즈 2006년 기사로 콘텐츠를 점유하려는 주요 미디어 기업인 NBC와 유튜브의 대립에 대해 설명했다. 레이지 선데이 등 NBC 동영상 클립을 올리는 것에 대해 유튜브 측이 NBC 유니버셜에 문의했지만 NBC 측은 유튜브에서 자사 동영상 500건을 삭제해야 한다며 디지털밀레니엄 저작권법에 근거한 법적 조치를 통지한다. 레이지 선데이는 NBC 웹사이트에서 계속 무료로 시청할 수 있었고 아이튠즈에선 당시 1.99달러에 공개됐다.

웹 2.0(Web 2.0) 일환으로 유튜브에서 꾸준하게 인식되기 시작한 건 2006년 전반 무렵이다. 2000년대 닷컴 등장까지 90년대 초반은 인터넷 발명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웹1.0에선 대화방이 있었지만 온라인상 대화 기회는 한정되어 있었고 모두가 동영상이나 사진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웹2.0은 인터넷에서 교환이 가능한 코딩 방법을 몰라도 다른 사용자와 공유할 수 있는 도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다. 웹2.0이 온라인상 커뮤니케이션에 혁명을 일으킨 건 2003년 8월 등장한 마이스페이스(MySpace), 2004년 등장한 플리커(Flickr) 같은 사이트를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유튜브는 콘텐츠 불법복제에 의해 구축되어 왔지만 이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구글이 16억 5,000만 달러에 유튜브 인수를 발표한 건 2006년 10월 9일이다.

당시 구글은 구글 비디오(Google Video)라는 자체 동영상 서비스가 있었다. 이런 구글이 불법 콘텐츠에 의존하고 곳곳에 고소당한 동영상 공유 서비스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에 놀라지 않은 건 극소수였다. LA타임스는 2006년 유튜브를 광선검 싸움이나 가라오케 수업에 적합한 장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콘텐츠 수익 창출이 본격화된 건 2007년이다. 오버레이 광고를 비롯한 모든 종류 전략을 발표한다.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과 거래를 하면서 수익을 배분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2007년은 또 콘텐츠ID를 도입한 해이기도 하다. 저작권 침해 소송이 있었던 건 미국 미디어 기업인 비아콤(Viacom) 등 뿐이었다.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은 2007년 1월 16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대선 출마를 검토하는 위원회를 설립했다고 발표한다. 이 영상(Barack Obama : My Plans for 2008 )은 지금도 공개되어 있다. 2008년 대통령을 목표로 한 후보 16명 중 7명은 유튜브에서 출마를 발표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캠페인 내내 1,800개에 이르는 동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선거 당일까지 1억 1,000만 회 이상 재생되는 기록을 세운다.

2009년 유튜브에선 테크노 유토피아적 견해가 탄생하면서 자유 민주주의 세력으로 간주된다. UCLA(Journal of Education and Information Studies)가 2009년 발행한 문건에선 미디어 민주화에서 유튜브의 공헌을 문화와 교육, 사회, 정치적 함의를 가진 인터넷 직접 민주주의 가능성에 대한 혁신적 관점을 폭넓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유튜브는 대체 문화 구축에 적극 참여하고 인간 주체성과 풀뿌리 민주주의 사회 재건의 가치를 홍보할 기회를 개인에게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사회에 종사할 공간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후 유튜브가 정말 좋은 방향으로만 나아갔는지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2010년대를 통해 성장을 이룬 유튜브는 2018년 10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이름을 올린다. 2018년에는 13∼18세 사이 10대 중 51%가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반면 유튜브 사용자는 85%에 이른다는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영향력을 높여온 유튜브지만 문제시되는 화제도 많았다. 기후 변화에 대한 부정적 내용이나 가짜뉴스 등은 유튜브가 안고 있는 문제 중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가 탄생한지 15년이 지났지만 이제 강력한 미디어 플랫폼이 된 유튜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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